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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53] 주원장이 明을 세운 힘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19.08.30. 03:13

명()을 세운 주원장(朱元璋)에게 큰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 경솔함을 눌러 채비를 더욱 견고하게 갖추도록 이끈 주승(朱升)이다. 주원장이 주변의 군벌들과 거친 전쟁을 치르며 왕조 창업을 위해 다가가던 무렵이었다. 초야에 숨어 있던 주승을 찾아간 주원장은 먼저 천하 통일을 위한 방책을 물었다. 주승은 짤막한 권유를 건넨다. “성을 높이 쌓고, 식량을 널리 모으며, 왕을 서둘러 칭하지 말라(高築墻, 廣積糧, 緩稱王).” 왕조 건업에 혈안이었으나 영리했던 주원장은 재빨리 이 말의 요체를 알아들었다. 그에 따라 자신의 근기(根基)를 튼튼히 다지고, 전쟁 수행을 위한 경제력 확보에 나서면서 창업 시점을 앞당기고자 서두르지 않았다. 결국 그는 명 왕조의 건국자로 우뚝 선다. 현대 중국을 세운 마오쩌둥(毛澤東)도 이를 패러디했다. 옛 소련과의 대립이 정점을 향해 치닫던 1972년이었다. 그는 이런 지시를 내린다. “방공호를 깊이 파고, 식량을 잘 모으며, 패권을 추구하지 말라(深挖洞, 廣積糧, 不稱覇).”

주승의 말은 ‘주원장의 개국삼책(開國三策)’, 또는 ‘아홉 글자 방침(九字方針)’으로 지금까지 전해온다. 국가를 이끄는 사람, 큰일을 이루려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를 되새기게끔 하는 말로도 유명하다. ‘성을 높이 쌓는 일’은 제 안전의 토대를 무너뜨리지 말라는 충고다. ‘식량을 널리 모으는 일’은 제 동력(動力)을 잃지 말라는 권고다. ‘성공을 서둘지 않는 일’은 명분보다 실리(實利)에 주목하라는 뜻이다. 주원장의 후대인 현재의 중국인은 이 가르침을 절반 정도는 이뤘다. 요즘 많은 문제에 봉착했지만, 근간을 잘 유지해 개혁·개방으로 국부(國富)를 쌓았다. 이 권유가 정말 필요한 곳은 어쩌면 요즘의 우리다. 안보의 근간이 흔들리고 경제는 어려운데, 명분을 다투느라 실리를 돌아볼 겨를조차 없으니 꼭 그렇다.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29/20190829035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