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러스트=이철원

“틱 환자도 장애인 인정해야” 판결 내려

이균용 후보자 판결·논문 보니…
양은경 기자 방극렬 기자
입력 2023.08.23. 03:36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법관 생활 33년 6개월 거의 전부를 각급 법원에서 재판 업무에 종사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이 후보자는 보수로 분류되는 성향과 상관없이 법과 원칙에 충실한 판결을 해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애인 권리 신장한 ‘틱’ 판결

22일 김대기 비서실장이 지명을 발표하며 이 후보자의 대표 판결로 언급한 ‘장애인 권리 신장 판결’은 2016년 서울고법이 ‘틱(특별한 이유 없이 신체를 빠르게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증상)’을 장애로 인정한 내용이다. 중증 틱에 해당하는 ‘투렛증후군’을 앓는 사람이 장애인 등록을 요구하며 지자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 후보자는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틱’이 없다는 이유로 보호받지 못한 것은 헌법상 평등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였다. 이 판결은 이듬해 ‘장애인 인권 디딤돌 판결’로 선정됐다.

◇노동 사건, 법리에 따른 결론

이 후보자는 최근 수년간 법관의 ‘성향’을 가르는 지표로 평가받는 근로자 관련 사건에서 사안에 따라 다른 결론을 내렸다.

2016년 골프장에서 돌 쌓기 공사를 하던 일용직 근로자가 축대가 무너져 사망한 사건에서는 1심을 깨고 유족 손을 들어줬다. 망인을 고용한 업체가 근로시간과 장소를 정했기 때문에 ‘근로자’라는 것이다.

반면 2015년 차량 배송 회사에서 신차를 배정받아 고객이 지정하는 장소까지 갖다주는 업무를 하던 사람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유족 급여를 청구한 사건에서 1심을 뒤집고 유족 패소 판결을 했다. 사망한 사람이 직접 탁송 경로 등을 지정할 수 있어 차량 배송 회사의 지시·감독을 받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한 판사는 “이 후보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두 번 지내 법리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특정 진영을 편들거나, 요즘 문제되는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적법절차 중시, 강력범은 엄벌

이 후보자는 2005년 서울북부지법에서 마약 복용 혐의자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하면서, 마약 사범 소변 강제 채취 때 의사가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일본과 미국에서는 인권 보호를 위한 ‘적법절차’로 보장돼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처음 내린 결정이었다.

폭력 행사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 이 후보자는 2019년 아내 목에 전깃줄을 감고, 갈비뼈를 부러뜨린 전직 경찰관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8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가정 폭력에 지친 피해자가 엄벌을 원한다”는 이유였다. 2020년 고시원에서 이웃을 흉기로 살해한 남성의 항소심에서도 ‘심신 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1심과 같은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이 후보자는 또 2019년 백남기씨 사망 당시 집회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업무상 과실 치사)로 재판에 넘겨진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2심에서 앞서 무죄로 판단한 1심을 깨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하기도 했다. 구 전 청장이 부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을 예상하고서도 수동적으로 보고만 받았다는 이유였다.

이 후보자는 2013년 배우 신은경씨와 병원의 민사소송에서 “고객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사진 등을 사용하면 퍼블리시티권(초상 사용권) 침해”라고 판단하면서 연예인의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 주목받았다.

이 후보자는 언론 자유를 중시한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는 2006년 한 교회를 비판하는 종교 잡지에 대한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대법원 판례를 해설하는 논문에서 “가처분에 의한 사전 금지는 사실상 검열 성격을 띠는 만큼 엄격한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균용
김대기
백남기
구은수
신은경

원글: https://www.chosun.com/national/court_law/2023/08/23/XLPFXX2VB5F3TCVB4YFVSFN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