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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북한 경제 말아 먹은 분

김홍수 기자
입력 2023.08.23. 20:45 업데이트 2023.08.23. 23:35

일러스트=이철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침수 피해 지역 현지 지도 과정에서 “건달뱅이들이 무책임한 일본새(일하는 태도)로 국가 경제 사업을 다 말아먹고 있다”면서 김덕훈 내각 총리에게 막말을 퍼부었다. ‘총리의 해이함’을 비난한 김 위원장은 “정치적 미숙아들, 지적 저능아들, 책무에 불성실한 자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면서 대대적 숙청을 예고했다. 자신이 잘못 해 놓고 다른 희생양을 만드는 것은 김정은이 자주 쓰는 통치술이다.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후계자 역할을 하던 2009년, 김정은은 돈주(신흥 부자)들이 장롱에 숨겨둔 돈을 끌어 낸다며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현금을 100대1로 교환해 주면서, 1가구당 15만원으로 한도를 묶었다. 설익은 정책은 대참사를 낳았다. 전국 장 마당이 마비되고, 기업, 국가기관 운영이 줄줄이 중단됐다. 민심이 험악해지자 노동당 재정계획부장 박남기를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지주의 외손자 출신으로 자본주의를 이식하려 한 간첩이었다”면서 그를 공개 처형했다.

▶김정은의 무자비한 제왕학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다. 김정일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 수십만 명의 아사자가 생기자, 미제의 간첩으로 포섭된 노동당 농업비서 서관희의 농단 탓이라면서 그를 공개 처형했다. 또 6·25전쟁 때 행적을 조사해보니 간첩 혐의가 있다며 당 간부 등 2000여 명을 숙청했다. 희생자가 너무 많아 민심이 흉흉해지자 간첩단 사건을 조사한 간부들을 “당과 대중을 이간시켰다”면서 또 처형했다.

▶김정은이 국정 실패를 인정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2021년 조선노동당 8차 대회에서 김정은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이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유엔의 고강도 제재, 코로나 사태 과잉 대응에 따른 북·중 무역 중단, 여름철 수해 등 3중고가 겹쳐 비참한 현실을 감추려야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2013년 김정은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표방한 순간, 북한 경제의 추락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북한이 핵 개발에 쓴 비용만 185억달러(약 24조원)에 이른다. 15억달러는 핵 실험·탄두 개발 등 직접 비용, 170억달러는 그 돈을 경제 분야에 투자했으면 얻을 수 있었던 소득, 즉 기회비용이다. 둘을 합하면 북한의 한 해 GDP에 육박한다. 외화가 바닥난 북한은 핵 개발 자금을 구하느라 가상 화폐 해킹에 목을 매는 현대판 해적 국가로 전락했다. 북한 경제를 말아먹은 장본인이 누군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김덕훈
박남기
서관희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3/08/23/V2P65EOWJZCMBIR27FLIUUFPD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