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만 의존, 지원 끝나면 경영난
곽래건 기자 김영관 인턴기자(서울대 동양사학과 졸) 김병권 인턴기자(서강대 국문과 4)
입력 2023.08.25. 03:00 업데이트 2023.08.25. 06:23
강원도에서 식품을 제조하는 A업체는 사회적 취약 계층을 고용해 자립을 돕겠다는 취지로 2015년 설립됐다. 예비 사회적 기업을 거쳐 2018년 정식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았고, 5년간 인건비를 포함해 약 3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 하지만 정부 지원이 종료되자 경영 악화로 폐업했다.
2017년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경북 지역 제조 업체 B사 사정도 비슷하다. 2020년까지 8억4000만원을 정부에서 지원받으며 11명이던 직원이 두 배로 늘었지만, 정부 지원금이 끊기자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직원을 7명으로 줄여야 했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했지만, 사회적 기업들이 정부 지원에 의존해 자생력을 키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애초 취지가 퇴색됐고, ‘정부 지원금 빼먹기’ 용도로 전락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정부가 풀지 못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돈도 버는 기업을 뜻한다. 외부 지원에 의존하는 시민단체와 달리 기업 활동을 통해 매출을 올리고 사회문제도 해결하겠다는 것이 기본 구상이다. 노숙인 자립을 위해 이들에게 잡지를 팔게 하는 ‘빅이슈’가 대표 사례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기업 지원이 본격화한 것은 사회적기업육성법을 제정한 2007년부터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19~20대 국회에서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대표 발의하며 힘을 실었고,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사회적 경제 육성’을 내세웠다. 문 정부를 기점으로 예산이 계속 증가해, 고용부의 올해 관련 예산이 2042억원에 달한다. 2007년 55개이던 사회적 기업은 지난 6월 말 기준 3597개까지 늘었다. 사회적 기업 전 단계인 ‘예비 사회적 기업’도 2559개에 이른다.
정부 지원은 ‘특혜’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최대 5년간 50명까지 인건비 일부를 대주는데, 올해 기준으로 1인당 최대 140만원을 지원한다. 일반 직원이 아니라 회계 등 전문 지식을 갖춘 인력이라면 이와 별개로 최대 3명까지 1인당 월 250만원을 또 지원한다. 사업 개발비도 연간 1억원씩 최대 3억원까지 지원한다. 5년간 법인세와 소득세를 50~100% 감면하고, 부동산 취득세도 절반만 내면 된다. 정부는 공공기관에 사회적 기업 제품과 서비스를 우선 구매하도록 권고한다. 24일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865개 공공기관의 구매 금액만 2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결과는 초라하다. 사회적 기업 상당수가 정부 지원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한 운수 업체는 2017~2022년 인건비 등으로 약 11억원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지원이 끝나자마자 경영난에 내몰리며 직원 수가 1명까지 줄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전체 사회적 기업의 50.8%가 적자를 기록했다.
허위 서류를 작성하거나 직원 인건비를 현금으로 돌려받는 등 지원금을 부정 수급하는 사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유령 직원을 만들어 인건비 5600만원을 챙긴 서울의 한 식품 회사가 고용부에 적발됐다.
사회적 기업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사업 행태가 일반 기업과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회적 기업 인증이 사회적 가치 창출보다는 정부 지원을 받아내기 위한 통로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튜브에선 “어떤 정부 지원금보다 혜택이 크니 사회적 기업 인증에 도전하라”는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정부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내년도 예산을 대폭 줄일 계획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야당이 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의 ‘사회적경제기본법’ 처리를 주장하고 있어 찬반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national/labor/2023/08/25/R5RPIGKRW5GRJD42RJFEGH36Q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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