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형 기자
입력 2023.09.26. 03:00
아폴로 우주인들이 설치한 달 지진계로 달 구조 비밀 밝혀내
AI로 재분석하니… 햇볕 받아 팽창한 착륙선이 미세 지진 만들어
2025년 달에 다시 가는 인류… 지구 밖 거주지 개척 성공할까
중국 한나라 천문학자 장형(張衡)은 서기 132년 독특한 발명품을 만들었다. 1.8m 높이 둥그런 통을 둘러 용 여덟 마리를 거꾸로 붙이고, 각각의 용 머리 아래에 입 벌린 개구리를 놓았다. ‘지동의(地動儀)’라 부른 이 기구는 지진이 나면 통 안에 서 있던 기둥이 쓰러지면서 지진 발생 방향의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를 개구리 입으로 떨어뜨렸다. 최초의 지진계(地震計)이다. 뤄양에 설치한 지동의가 500km 넘게 떨어진 간쑤성 지진을 감지할 정도로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현대적 방식의 지진계는 일본에서 탄생했다. 1880년 요코하마 대지진이 일어나자 일본에 있던 영국 지질학자 존 밀른이 지진파를 감지하고 기록하는 수평 진자 지진계를 발명했다. 그의 제자 세이케이 세키야는 세계 최초 지진학 교수가 됐다. 오늘날 지구에는 2만6000곳이 넘는 지진 관측소가 있다. 단 몇 초 지진을 먼저 감지하는 기술 개발과 감시망 구축에 전 세계가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다.
지진계는 지구 밖 우주에도 있다. 1969년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의 손에 지진계가 있었다. ‘과연 달에 지진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태양광 지진계를 네 개 설치했다. 올드린은 지진계 옆을 밟으며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했다. 영하 170도까지 떨어지는 극한 환경에서 지진계는 원자력 장비인 방사성 동위원소 히터로 버티며 달의 지진, 이른바 월진(月震·Moonquake)을 기록했다. 지진계가 월진계라는 새 쓰임새를 갖는 순간이었다. 중도 귀환한 아폴로 13호를 제외한 아폴로 12호부터 16호가 월진계를 달에 설치했다. 아폴로 탐사선 착륙과 이륙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달에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 월진계가 기록하고 분석하면서 달의 비밀이 밝혀졌다. 대기가 없는 달의 표면은 수많은 운석 충돌로 너덜너덜했고 깊게 파이거나 끊어져 있었다. 핵은 대부분 철로 구성돼 있었다. 달은 거대한 암석 덩어리가 아니라 지구처럼 다양한 층으로 이뤄졌다.
1969년부터 1977년까지 최고 규모 5.5에 이르는 1만2000건의 월진이 월진계에 기록됐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달에 네 종류의 월진이 있다고 본다. 지구 중력이 달을 당기거나 놓아주면서 발생하는 심발 월진, 내부 구조 변화로 인한 천발 월진, 표면 온도 변화로 생기는 열 월진, 운석 충돌로 인한 월진이다. 월진은 지진보다 훨씬 오래 진행된다. 지구는 액체인 물이 지진 진동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면서 최장 30분 정도만 계속되지만 달 내부는 건조하고 단단하기 때문에 마치 소리굽쇠를 친 듯한 진동이 이어진다.
아폴로 월진계는 1977년 5월 일제히 꺼졌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더 이상 기록이 필요없다고 판단했고 연간 10억원 수준인 예산을 삭감했다. 하지만 월진계가 멈춘 뒤에도 40년 넘게 당시 기록을 해석해온 과학자들의 집념은 지금도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고 있다. 캘리포니아공과대 연구팀은 이달초 국제 학술지 ‘지구물리학 연구’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당시 월진계 기록을 분석한 결과 월진의 다섯째 원인을 찾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AI로 아폴로 월진계 기록에서 이전에 몰랐던 미세 월진의 흔적을 분리했다. 이 월진은 달에 태양이 뜨는 14일마다 발생했고 5~6분씩 이어졌다. 연구팀이 여러 곳에 배치된 아폴로 월진계를 삼각 측량 도구로 삼아 진원(震源)을 확인하자 그곳에 아폴로 17호 착륙선 기지가 있었다. 달에 마지막으로 내린 유인 착륙선이다. 혹한의 밤을 보내며 차갑게 식은 금속 재질의 착륙선 기지가 햇볕을 받으면서 급속히 팽창하고 그 여파로 달에 인공 월진을 만들었다. 우주인을 안전하게 달에 데려오고, 다시 돌아가는 발사대 역할까지 마친 뒤 고독히 달을 지키던 기지는 어느새 달의 아침을 온몸으로 깨우는 알람이 됐다.
달의 미래는 이제 아폴로의 쌍둥이 누나 아르테미스에 달려 있다. NASA는 아르테미스 미션으로 달에 다시 우주인을 보내 달 유인 기지를 건설하려 한다. 아폴로 때보다 고도화된 월진계가 이미 준비돼 있다. 달의 구조를 더 자세하게 파악하고, 월진에 견딜 수 있는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핵심 장비이다. 고대인의 상상에서 만들어진 남매는 인류에 새 거주지를 선물한 존재가 될까. 첫 아르테미스 우주인은 2025년 달에 착륙한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9/26/VJVXKNB42VHPLIAPXI5DI5YC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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