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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동선 겹치지 말자” 美돌싱들 이혼하고도 동거하는 까닭

정석우 기자
입력 2023.11.30. 04:59 업데이트 2023.11.30. 08:21

집값에 대출금리까지 함께 뛰며
독립 땐 감당 못해 ‘불편한 동거’

일러스트=이철원


미국 조지아주 스넬빌의 한 60대 여성은 지난해 8월 이혼한 남편과 ‘남남’인 상태로 8개월 넘게 같이 살았다. 부부 금슬이 좋을 때 받았던 연이율 3.5% 저금리 주택담보대출 때문이다. 살림을 둘로 쪼개자니 연 7%를 넘어선 높은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발목을 잡았다. 그동안 집값도, 월세도 훌쩍 뛰었다. 결국 어색한 동거를 이어가기로 했다. 식료품을 각자 구입해 따로 식사하고, 남편을 마주치기 싫을 땐 손자를 돌본다는 이유로 아들 집으로 갔다. 이런 ‘쇼윈도 부부’ 생활은 아내가 결국 남편의 주택 지분을 사들이면서 끝이 났다.

최근 미국 남녀들이 고공 행진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집값 때문에 억지로 같이 사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그러자 예컨대 2층집에서 2층은 남편이, 1층은 아내가 각각 거주하는 방식으로 경계를 만들어 불편한 동거를 이어간다고 한다. 세탁기 앞에서 마주치지 않기 위해 각자 세탁 시간을 지정하고, 동선이 겹치는 상황을 피하려고 스마트폰 메시지로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부부가 이혼할 때 공동 명의 집을 팔아 각자 독립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미국의) 부부들이 헤어지고 싶어도 주택 시장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WSJ는 전했다. 그간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물가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껑충 뛰었다. 프레디맥(연방주택저당공사)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만기 30년 주택담보대출 적용 금리는 연 7.3%로 2년 전(연 2.9%)의 2.5배다. 하지만 고금리 기조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파로 물가가 급등하자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벌어진 현상이다. 유독 미국에서 부부들이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관행 때문이다. 미국은 30년 내내 같은 금리가 유지되는 순수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이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77%에 달한다. 집을 팔고 새로운 집으로 갈아타려면 금리도 기존보다 올라간다. 반면 변동금리 대출 비율이 압도적인 한국 등 상당수 국가는 이미 시장금리를 반영해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오른 상황이라 이런 문제가 없다.

미국 집값이 ‘나 홀로’ 고공 행진하고 있다는 점도 부부들의 홀로서기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한국 등 대부분 국가는 고금리로 집값 상승세가 꺾이는 중이지만, 미국은 저금리 매력을 포기하지 못한 주택 소유자들이 집을 내놓지 않으면서 ‘매물 잠김’ 현상이 장기화해 집값이 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워싱턴DC·뉴욕·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20대 도시 주택 가격 지수를 집계하는 ‘미 스탠더드 앤드 푸어 케이스 실러 20대 도시 주택 가격 지수’는 지난 9월 318.59로 2년 전(277.38) 대비 14.9% 올랐다. 이 지수가 집계되기 시작한 1987년 이후 9월 기준 역대 최고다.

미국에서 헤어지려는 부부 입장에서 평균 주택 임차료가 2년 전 대비 9% 넘게 올라 월세로 각자 새 살림을 차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5%대였던 지난해 7월 60만달러(약 7억8000만원)를 빌려 애리조나주 주택을 구입한 또 다른 부부도 한동안 어색한 동거를 이어가다가 헤어졌다고 WSJ는 전했다. 부모의 ‘억지 동거’에 대한 자녀들의 혼란이 극에 달하자 부부는 결국 집을 급매로 내놓고 헤어졌다고 한다.

원글: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3/11/30/AAUYXUM5WVAGZFE75HLNHBV3M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