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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이젠 등을 밀어줄 사람이 없다

오세혁 극작가·연출가
입력 2024.02.01. 03:00

일러스트=이철원


아들은 어릴 때부터 설과 추석만 다가오면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버지가 목욕탕에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아들은 목욕탕에 갈 때마다 다짐하는 것이 있었다. 이번에는 꼭 아버지를 이기겠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목욕탕만 가면 늘 아버지에게 졌다. 온탕까지는 그럭저럭 비슷한 시간을 견뎠지만 열탕은 발을 담그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바빴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한 호흡으로 목까지 잠수하는 내공을 뽐냈다. 사우나는 1분이 10분처럼 흐르는 곳이었다. 아들은 늘 1분을 못 견디고 탈출했다. 아버지는 여유롭게 두 눈을 감고 “시원하다” 소리를 판소리처럼 흥얼거렸다.

아들의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은 때를 미는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돌아가면서 등을 밀어주었는데 아들이 아무리 힘을 써도 아버지는 뭔가 아쉬운 표정이었다. “좀 더 박박” 밀어보라고 말했지만, 이를 악물고 밀어도 “좀 더 박박”이 되지 않았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뒤돌아서 이태리타월을 뺏어 들고는 아들의 등을 엄청난 괴력으로 빡빡 밀면서 “이렇게! 이렇게!”를 외쳤다. 아들은 늘 신나는 비명을 질렀다.

때를 다 밀고 나서 샤워하면 온몸이 로션을 바른 것처럼 만질만질했다. 그 상태로 목욕탕 문을 열고 탈의실로 나서면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매점 앞에서 우유를 마실지 두유를 마실지 망설이고 있으면 아버지는 늘 두 병을 함께 사주었다. 뽀송해진 온몸으로 설렁탕 집에 가서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 몸 바깥에 이어서 몸속까지 목욕하는 기분이 들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아버지랑 이상하게 어색해졌다. 아버지는 중2병 아들이 못마땅했을 것이고, 아들은 사춘기를 몰라주는 아버지가 서운했을 것이다. 대화는 끊긴 지 오래되었다. 목욕탕은 친구들과 가는 곳이 되었다.

아들은 그렇게 고3을 맞았다. 어느 봄날 토요일이었다. 그 당시 고3은 토요일에도 자율 학습을 했다. 날이 너무 좋아서 교실에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싸 들고 학교를 나왔다. 아버지는 늘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돌아왔기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잠이나 실컷 잘 생각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버지가 집에 있었다. 아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상황을 짐작한 아버지가 엄한 목소리로 왜 벌써 집에 왔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엉겁결에 “배가 아파서”라고 둘러댔다. 아버지는 한참 말이 없다가 “병원에 가자”며 일어섰다. 아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제발 꾀병이 들통나지 않기를 빌며 병원으로 향했다. 진찰을 받자마자 황당한 일이 생겼다. 아들이 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배도 안 아프고 멀쩡하겠지만, 맹장이 점점 부풀고 있으니 두 시간 정도가 지나면 엄청 아플 것이고 그때 수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의심하는 눈초리를 거두고 미안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엄청 당황스러웠다. 꾀병을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맹장 수술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병원 로비에 앉아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 아버지는 어색한 두 시간을 버티느라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당신이 겪은 수술 경험, 아마도 오랫동안 목욕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짐작, 퇴원하면 목욕탕을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 그렇게 어색한 두 시간이 채워졌고 아들은 거짓말처럼 배가 아파오면서 맹장 수술을 받았다.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수술 자국이 아물어서 목욕탕에 갈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정말 오랜만에 목욕탕에 함께 갔다. 서로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아들은 여전히 열탕에 발을 담그자마자 비명을 질렀고 아버지는 한 호흡으로 목까지 잠수했다. 아들은 여전히 1분을 못 채우고 사우나에서 도망쳤고 아버지는 여전히 “시원하다”를 흥얼거렸다. 단 하나 변한 것이 있다면 아버지의 등보다 아들의 등이 커진 점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말없이 서로 등을 밀어주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커진 아들 등이 기특했을 것이고 아들은 작아진 아버지 등에 울컥했을 것이다.

이십여 년 세월이 흘렀고, 아들은 점점 그 당시 아버지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는 열탕에 허리까지는 담글 수 있게 되었고 사우나에서 10분에 가깝게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시원하다”가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아들은 그 모습을 뽐내며 자랑하고 싶지만 이제 아버지는 세상에 없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02/01/KX6NFOH7LRECTPKWL6V444GZ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