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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저임금 선진국’ 일본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4.03.18. 20:20 업데이트 2024.03.18. 23:45

일러스트=이철원


1990년대 초 일본 사회를 다룬 만화 ‘짱구는 못 말려’. 무역상사 계장인 짱구 아빠의 연봉은 650만엔이었다. 당시 5대1 원·엔 환율을 곱하면 3250만원 수준이다. 한국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은행 대리 아빠가 등장한다. 그의 월급은 58만원. 보너스를 600%로 잡으면 연봉이 1000만원 수준이다. 30년 전엔 일본 대기업 연봉이 한국 은행원보다 3배쯤이었던 것 같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한일 간 임금 역전을 가져왔다. 엊그제 한국경총이 발표한 ‘한일 임금 추이’를 보면, 2022년 기준 한국 대기업의 평균 월급은 588만원으로, 일본 대기업 443만원보다 32%나 많다. 지난 20년간 일본 대기업 연봉은 7% 감소한 반면 한국 대기업 연봉은 158% 오른 결과다. 해외 이민 갔다 돌아온 일본인들이 “어떻게 월급이 30년 전과 똑같냐”고 놀란다고 한다.

▶한때 1인당 GDP 세계 1~2위를 다투던 일본에서 경기침체와 물가 하락이 동반하는 디플레이션 탓에 임금도 곤두박질쳤다. 기업들이 물가 하락을 이유로 임금을 계속 동결했다. 도요타 같은 대기업 노조들은 ‘국제경쟁력 저하’를 걱정하며 임금 인상보다 고용 유지를 선호했다.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는 “종신고용과 근무연수별 임금 탓에 급여가 적어도 직장을 옮기지 않는 풍토가 저임금 동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한다.

일본 식민 지배를 받고도 일본을 좋아하는 대만도 저임금이다. 10년 전 대만의 대졸 사원 초임은 월 92만원이었다. 월급은 짜고 집값은 천정부지여서 청년들이 대만을 ‘구이다오(鬼島·귀신 섬)’라고 자조했다.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 TSMC도 예외가 아니다. 2020년 기준 TSMC 임직원 평균 연봉은 7600만원으로 삼성전자(1억2700만원)의 60% 수준이다. 얼마 전 TSMC가 일본 공장에서 일할 박사급 인재를 채용했는데, 월급이 35만엔(320만원)에 불과해 한국 대기업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일본이 저임금 국가 오명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기업 단체인 게이단렌도 “임금 인상이 기업의 책무”라고 말한다. 유니클로, 세계 4위 반도체 장비업체 도쿄 일렉트론이 한 번에 임금을 40%나 올리는 등 기업들도 호응한다. 하지만 1000만명이 넘는 근로자는 여전히 연봉 200만엔(1800만원) 이하다. 그래서 ‘연봉 200만엔으로 풍요롭게 살다’ 등 초절약 요령을 알려주는 책이 베스트셀러다. 사회가 이런데도 집단 저항은 전혀 없다. 우리 눈으론 ‘이상한’ 나라다.

짱구는 못 말려
응답하라 1988
오마에 겐이치
연봉 200만엔으로~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03/18/JTIFYWGVCBFRVIRAQBDRLE6OXY/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