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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사설] 세계 최악 저출생 국가에서 세금은 자녀 많을수록 불리

조선일보
입력 2024.05.21. 00:25

/이철원


선진국들이 가족 친화적 세금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세계 최악의 저출생 국가인 한국은 자녀 많이 키우는 가족에게 불리한 세제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20세 이하 자녀에 대한 소득공제액은 1인당 150만원으로 16년째 똑같은 금액이다. 소득 없는 자녀인데도 만 20세가 넘으면 무조건 공제 제외다. 심지어 만 20세 이하 자녀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연간 500만원 이상 근로소득을 올리면 공제에서 제외한다.

다자녀 가구가 자동차를 구입할 때 취득세를 감면해 주는 제도도 2010년 도입 후 한 번도 기준을 바꾸지 않아 감면액이 15년째 그대로다. 전세 대출 원리금 소득공제나 월세 세액공제 같은 각종 주택 관련 세금 역시 다자녀 가족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다. 예컨대, 전세 대출 원리금에 대해 연간 이자 상환액의 40% 범위에서 최고 400만원을 공제해 주는데 적용 대상이 수도권 기준 전용면적 85㎡(비수도권은 100㎡)까지다. 방이 많이 필요한 다자녀 가구가 이보다 넓은 집을 전세로 얻으면 공제를 못 받는다.

주요 선진국은 저출생 극복을 위해 세금 제도부터 가족 친화적이다. 독일의 경우, 자녀 소득공제액을 지난 16년간 1932유로(약 280만원)에서 3192유로(약 470만원)로 65.2% 올렸다. 맞벌이 부부에겐 자녀 공제도 각각 해준다. 부부 공제액을 합치면 혜택이 자녀 1인당 6384유로(약 940만원)까지 늘어난다. 나라에서 세금 안 걷을 테니 아이 많이 낳아 잘 키우라는 뜻이다.

저출생 극복의 성공 국가로 꼽히는 프랑스는 육아 도우미 비용까지 세액공제해 준다. 가족 수가 많을수록 세율을 낮게 적용하는 차등 소득세율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일본도 자녀 1인당 공제액이 우리의 2배에 달하는 38만엔(약 330만원)이다. 자녀가 19세 이상 성인이 되어도 소득이 없는 학생이면 23세까지 25만엔을 공제해 준다. 싱가포르의 경우, 일하는 여성에게는 자녀 수에 따라 차등적으로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직장 여성 자녀 공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6년간 280조원의 저출생 예산을 쏟아붓고도 출산율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현금성 지원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자녀 키우는 부모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세금 제도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자녀 키우는 가구에는 소득공제를 더 해주고 선진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소득세 안 내는 사람들 비율은 대폭 줄이는 등 저출생·고령화에 맞춰 소득세 부과 방식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4/05/21/RDENC6Q2GNAGTPDFK35G62LPQU/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