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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환자 11명 동시에 돌봐… 응급실서 홀로 외줄타는 심정"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입력 2024.09.05. 00:55 업데이트 2024.09.05. 07:00

일러스트=이철원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4일 최근 불거진 응급실 의료 공백 이슈에 대해 “응급실에 어려움이 일부 있지만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의료계는 “의료진이 힘겹게 응급실을 지키고 있지만 번아웃(극도의 피로)으로 힘들어하고 있고, 많은 응급실이 문을 닫는 ‘셧다운’ 직전까지 몰린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서울 서남권에서 중증 응급 환자를 책임지는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이대목동병원도 이날부터 매주 수요일 야간(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 30분)엔 성인 응급 환자를 받지 않는 ‘제한적 운영’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해 이 병원 남궁인 응급의학과 교수가 현재 응급실에서 겪고 있는 상황을 자세히 쓴 글을 보내 전문(全文)을 소개한다.

나는 혼자 다섯 시간째 근무 중이었다. 오전 시간은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권역응급센터에는 여섯 명의 환자가 재원 중이었다. 숨이 찬 할머니는 심부전에 빈혈이 심했다. 복통 환자는 장경색으로 진행될까 지켜봐야 했다. 어지럼증, 두통, 발열 환자도 있었다. 전광판 시계가 낮 한 시 반을 알렸다. 여유 있는 편이었지만 점심 먹을 틈은 없었다.

구급대에서 전화가 왔다. 투석받는 오십대 환자가 식사하다가 쓰러졌다고 했다. 아내가 발견했고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고 했다. 권역센터에서 심정지는 무조건 수용해야 했다. 의료진은 중환 구역에서 환자를 받을 채비를 했다. 체류 중인 환자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장갑을 꼈다. 환자는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고 들어왔다. 병원 앞에서 맥박이 돌아왔다고 했다. 엠부백을 환자의 입에 대고 짰다. 자발 호흡이 약했다. 투석 관련된 심정지일 것 같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삽관을 준비해달라고 했다.

멀리서 또다시 심정지 환자 문의가 왔다고 소리쳤다. 공사장에서 제세동기로 맥박이 돌아왔다고 했다. 심폐소생술 중은 아니라서 일단 수용하겠다고 했다. 어떻게든 권역에서 감당해야 하는 환자였다. 눈앞 환자의 구강을 왼손에 쥔 블레이드로 벌렸다. 오른팔이 목디스크로 저렸지만 튜브는 다행히 기도로 잘 들어갔다. 엑스레이 찍고 동맥혈 결과지를 가져다달라고 했다. 환자의 아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기실에서 서성댔다. 다행히 맥이 돌아왔고 심정지 원인을 찾고 있다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삽관 동의서를 받을 시간은 없었다.

두 번째 심정지 환자는 자발 호흡이 가능했다. 구급대가 심실세동 기록지를 내밀었다. 이번에는 명확히 심근경색으로 보였다. 환자는 의식이 온전하지 않아 산소마스크를 쓰고 몸부림쳤다. 심장내과에 전화를 걸었다. 심실세동이 확인된 자발 순환 회복 환자로 심근경색 같다고 전했다. 다행히 심장내과는 빨리 조영술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항부정맥제 처방을 내는데, 사흘 전부터 말이 어눌하고 왼쪽 팔다리의 힘이 빠졌다는 팔십대 환자 문의가 왔다. 뇌졸중은 중증 질환이었지만 급성기는 넘긴 상태였다. 이 환자까지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오라고 했다.

응급실 진료 대란이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로 환자가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자리로 돌아오자 굴 먹은 뒤 설사하는 이십대 환자가 왔다고 했다. 경증으로 진료가 어려워 근처 병원을 안내해달라고 했다. 대기실에서 보험사 제출 진단서 발급 환자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항의하고 있었다. 진료 구역에서는 혈액이 준비되었는데 수혈 동의서가 필요하고, 복통 환자는 통증을 더 심하게 호소하고, 어지럼증 환자는 두 차례 구토했다고 했다. 일단 모두 알겠다고 했다. 갑자기 두 시간 전에 타원에서 오기로 한 심근경색 의증 환자가 지금 도착했다. 한숨이 나왔다. 빨리 심전도부터 찍어 보여달라고 했다. 뇌졸중이 의심되는 팔십대 환자는 실제 팔다리의 힘이 약했다. 어눌하게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했지만 끝까지 듣기 어려웠다. 뇌출혈 같아 일단 영상부터 찍기로 했다.

재원 환자는 이제 11명이었다.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심근경색 의심 환자의 심전도는 애매했다. 병력과 통증 양상을 빨리 청취해야 했다. 팔십대 환자는 뇌출혈이어서 신경외과를 호출했다. 아까 발열 환자는 역시 코로나 양성이었다. 의료진이 환자를 격리실로 급하게 옮겼다. 전화로 여덟 시간 동안 소변을 못 본 할아버지 문의가 왔다. 진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처음 심정지 환자의 엑스레이가 온통 흐릿했지만 동맥혈 검사는 의외로 괜찮았다. 호흡기를 다시 세팅하고 원인을 고민해야 했다. 문득 권역센터 전원폰이 울렸다. 요양병원에 있는 파킨슨, 폐렴 환자로 코로나 양성이라고 했다. 격리실이 없고 현재 코로나 환자를 특별하게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충청권 상황실에서 안구 손상 환자 수용 문의가 왔다. 간단하게 고개를 저었다. 심장내과에서 내려와서 두 번째 심정지 환자의 병력을 물었다. 내 브리핑을 들은 심장 전문의는 환자에게로 달렸다.

갈증이 느껴졌다. 권역응급센터에서 의사는 적어도 서너명이 필요했다. 내 몸은 하나뿐이었고 집중할 수 있는 일은 한 번에 하나씩이었다. 가장 중증 환자만 수용하다 보니 외줄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환자들이 운 좋게 버텨주고 있을 뿐이었다. 당장 인공호흡기를 만지고 심정지 원인을 파악하고 통증을 확인하고 신체 검진을 하고 약물을 처방해야 했다. 하나하나 생사와 직결된 문제였지만 결정을 내리는 건 나 혼자였다. 여유가 생기면 동의서와 진단서를 작성하고 보호자에게 설명도 해야 했다. 한 명으로 가능한 업무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모두가 위험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라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이 일을 나눠서 처리하고 고민해줄 동료가 절실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의사는 나 혼자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지 가늠되지 않았다.

눈을 힘껏 감았다가 떴다. 명단을 노려보며 심정지, 심실세동, 심근경색, 뇌출혈, 빈혈, 복통, 두통, 코로나, 어지럼증 등의 진단명을 중얼거렸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환자가 몰려들자 걷고 있는 의료진이 없었다. 모니터에서 열한명의 심박이 제각기 뛰었다. 바이털 사인, 피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 시티 등의 결과가 실시간으로 떴다. 명단을 파악하기도 전에 갑자기 중환 구역 간호사가 심정지 환자의 맥이 느려진다고 소리쳤다. 첫 번째 환자도 심근경색이었던가, 심전도는 불분명했는데, 에피네프린 투여를 지시하면서 심폐소생술을 위해 뛰어나갔다. 목덜미에서 통증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다 잠시 전광판이 보였다. 낮 두 시였다. 교대해 줄 동료가 올 때까지 아직 여덟 시간 남았다.

☞의학용어 키워드


권역응급의료센터: 중증 응급 환자를 진료하는 최상급 의료기관. 보건복지부가 상급종합병원, 300병상을 초과하는 종합병원 중 지정하며, 전국에 총 44곳 있다. 뇌압 감시 장비, 인공 심폐순환기(ECMO) 등을 갖추고 있다.

앰부백(ambu-bag)과 블레이드(blade):앰부백은 심폐소생술 등에 쓰이는 수동식 인공호흡기. 블레이드는 기관 삽관 등에 쓰이는 칼날 모양의 도구.

자발순환회복(ROSC·Return of Spontaneous Circulation): 자발적 심장 박동으로 맥박이 감지되는 상태.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contribution/2024/09/05/UKCUQ57HSJCNFIJNYP2QM3XT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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