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살 '피아노 전설'의 국내 팬미팅 포르투갈의 마리아 주앙 피르스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4.09.19. 00:33
▲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가 18일 팬 미팅에서 초상화를 선물받은 뒤 활짝 웃고 있다. /풍월당
“지금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에요.”
여든 살의 포르투갈 명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가 웃으며 말했다. 18일 서울 신사동 클래식 음반 전문점 풍월당에서 열린 ‘팬 미팅’ 자리였다. 이틀 뒤부터 열리는 내한 독주회를 앞두고 마련된 이날 행사는 80여 석 자리가 이미 동나서 1시간여 동안 서서 관람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피르스는 정형화된 드레스 대신에 짧은 머리와 화장기 없는 맨얼굴, 굽 없는 신발과 대마와 면 같은 천연 소재의 옷차림으로 유명하다. 그는 “의상은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이며 나는 최대한 단순함(simple)을 선택하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피르스는 1970년 베토벤 탄생 200주년 기념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모차르트·슈베르트·쇼팽 등 고전·낭만 레퍼토리에서 명성을 지닌 ‘살아 있는 피아노의 전설’이다. 하지만 이날 그는 “음악에서 연주자가 자신의 생각에만 사로잡히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일”이라며 “연주는 삶과 고통, 행복까지 모든 것을 관객들과 나누는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작곡가와 지휘자,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관객들의 소리까지 듣는 쌍방향 대화”에 연주를 비유했다. 피르스는 다섯 살 때 모차르트 소나타를 연주하고 일곱 살 때는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협연한 영재 출신이기도 하다. 70여 년간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모차르트의 음악은 같은 소절에서도 기쁨과 눈물, 빛과 고통 같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피르스는 연주자뿐 아니라 교육자로도 유명하다. 1999년에는 자신이 수십년간 살아온 포르투갈에 벨가이스 예술 센터를 설립하고 젊은 음악가들을 양성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벨기에에서도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합창과 예술 교육 프로그램도 열고 있다. 음악 외에도 영화와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제 간 워크숍도 개최한다. 하지만 그는 “마스터 클래스(대가들의 공개 강좌)는 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스스로 완성된 거장(마스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위험하며, 학생들과 함께 새로운 것을 탐구하려는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원한 현역’인 그는 은퇴에 관한 질문은 일절 받지 않았다. 피르스의 독주회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21일 아트센터인천, 26일 대전예술의전당, 27일 대구콘서트하우스, 29일 서울 강동아트센터에서 열린다. 10월 26일 성남아트센터에서도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연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