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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부부 別姓제

김진명 기자 
입력 2024.09.25. 20:47 업데이트 2024.09.25. 23:48

일러스트=이철원


워싱턴 특파원 시절,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가 물었다. “아빠와 나는 ‘패밀리 네임(Family name)’이 같은데 왜 엄마만 달라?” 같은 가족인데 왜 성(姓)이 다르냐는 것이다. 미국에는 결혼 후 남편 성을 쓰는 여성이 많지만, 한국은 다르다고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여성이 남편 성을 따르는 제도는 여성의 재산과 수입을 남성에게 종속시킨 중세 영국의 관습법 영향이라고 한다. 아버지의 권리가 남편에게 ‘양도’된다는 점을 확실히 하려는 제도다. 서구 국가 중 영미법권인 영국과 미국은 기혼 여성 10명 중 8~9명이 남편 성으로 변경하지만, 스페인을 포함한 라틴 문화권과 이탈리아 여성들은 자기 성을 유지한다. 아랍 여성들도 성을 바꾸지 않는다. 이들의 성은 ‘빈(~의 아들), ‘빈트(~의 딸)’로 시작한다. 사우디 공주인 리마 빈트 반다르 알사우드 주미 사우디 대사의 이름은 ‘사우드 가문 반다르의 딸 리마’란 뜻이다. 이런 곳에서 성은 ‘혈통’의 표현이므로, 남편 성으로 바꿀 수 없다. 한국, 중국, 베트남 등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미국의 퓨리서치 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혼 여성의 14%만 결혼 후에도 자기 성을 유지했지만, 석사 이상 학위 소지 여성은 그 비율이 26%로 높다고 한다. 여성의 지위가 높을수록 성을 유지하는 경향은 예전부터 있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평생 자기 성을 썼다. 고(故)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자기 성인 ‘윈저’를 자녀들에게 물려줬다.

보령제약 김정균(39) 사장은 창업주 김승호(92) 명예회장의 외손자다. 김 명예회장의 장녀인 김은선(66) 회장이 남편과 사별한 후, 그 아들인 김 사장이 어머니의 성인 ‘김’씨로 개명해 회사를 물려받았다. 2008년 민법 개정으로 혼인신고 시 남편과 아내 중 누구 성을 자녀에게 물려줄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어머니 성을 쓰는 일이 좀 더 보편적이 된다면, 이처럼 딸과 외손주가 기업을 물려받는 일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일본 차기 총리를 정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고이즈미 신지로(43) 전 환경상이 결혼 후에도 각자의 성을 유지하는 ‘선택적 부부별성(夫婦別姓)’에 찬성했다가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다. 일본은 무조건 부부 한 쪽의 성을 따르도록 하는 ‘강제적 부부동성’을 택하고 있다. 서구에 대한 동경이 강했던 메이지 시대 민법에 넣은 조항이라는데, 이제는 서구보다 더 강력하게 이를 고수하고 있어 묘한 느낌을 준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09/25/BLGESZWODNC3JJOJWQ5R3XTQ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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