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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추위를 녹이는 모닥불처럼… 마음의 온도 올려주는 소설들

[특집 : 지금 문학은] 온기를 충전해주는 소설 3권

황지윤 기자
입력 2024.11.30. 00:33 업데이트 2024.11.30. 02:40

모우어
천선란 소설집 | 문학동네 | 324쪽 | 1만7000원

피클보다 스파게티가 맛있는 천국
김준녕 소설집 | 고블 | 282쪽 | 1만7000원

심장이 뇌를 찾고 있음
케이트 포크 소설집 | 박민정 옮김 | 모모 | 380쪽 | 1만6800원

유난히 따듯했던 11월 말, 갑자기 강풍이 불고 우박이 떨어졌다. 곧 수도권에 눈이 내려 소복이 쌓였다. 다음 주부터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될 전망이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으슬으슬한 추위에 필요한 건? ‘지금 문학은’ 특집으로 몸과 마음을 따끈하게 데워 줄 ‘모닥불’ 같은 소설집 세 권을 골랐다. 타닥타닥 나무가 타면서 훈훈한 열기를 뿜어내듯 이 소설들이 웃음과 에너지, 그리고 온기를 충전해 준다.

◇달짝지근하고 다정한 SF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으면 행복해지거든요. 행복한 사람은 마음이 따듯해져요. 몸도요!” 첫 번째 단편 ‘얼지 않는 호수’에 나오는 등장인물 ‘야자’의 말이다. 빙하가 가득한 미래 세계가 배경이다. 모든 게 꽁꽁 얼어버린 세계지만, 야자는 어딘가 ‘얼지 않는 호수’가 있으리란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천선란은 2019년 장편 ‘무너진 다리’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해 장편 ‘천 개의 파랑’으로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받아 주목받았다. ‘모우어’는 그가 ‘노랜드’ 이후 2년 만에 낸 소설집이다. 2020~24년에 쓴 단편 여덟 편을 수록했다. 미발표작 두 편도 포함됐다.

천선란의 SF를 읽고 나면 달짝지근한 맛이 남는다. “망고 크림 카스텔라가 먹고 싶어”(‘너머의 아이들’) “빅풋의 몸을 뒤덮은 털은 작은 슈크림 깍지로 짜놓은 초코 크림으로 되어 있었다”(‘사과가 말했어’) 등 다디단 디저트를 떠올리게 하는 직접적 묘사 때문만은 아니다. 결코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 세계를 그리면서도, 그의 시선은 대체로 포근하다. “이 빙하 속에서 유일하게 치유되지 않은 화상인 셈이다. 한 사람의 다정함에 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얼지 않는 호수’) 천선란 특유의 이 다정함이 몸과 마음의 온도를 높여준다.

◇실소에 온기가 스민다

김준녕의 ‘피클보다 스파게티가 맛있는 천국’은 블랙 코미디 모음이다. 실없는 웃음을 연이어 터뜨리게 된다. 소소하게 웃다 보면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지극한 현실에 SF 같은 코드를 가미하는 것이 그의 특징.

펑펑 내린 흰 눈이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을 알렸다. 알싸한 추위에 코끝이 시리다. 한기가 스밀 때 몸과 마음의 온도를 높여줄 책 세 권을 추천한다. 달고 다정한 SF, 실소로 가득하지만 온기가 스미는 블랙 코미디, 기괴한 상상력이 주는 신선함을 즐겨보자. /일러스트=이철원


표제작의 주인공은 최(남자)와 희(여자). 이들은 유력 정치인 아들의 면접 점수를 조작해 구속된 김 교수의 연구실에서 만난다. 최는 김 교수가 외계 생명체를 찾겠다며 외부에서 고용한 AI 프로그래머다. 곧 연구실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희는 학생회관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학생회 소속이었다. 학생회관 관리 책임자였던 김 교수에게 여전히 분노한다. 딱히 접점이 없는 두 사람이 매일 연구실에서 만나 친밀감을 다진다.

최의 가장 큰 불행은 “더럽게 맛없는 스파게티”다. 각박한 현실에도 그저 스파게티에만 불평하는 사람이라면 자기를 이해해 줄 수 있으리라고 희는 생각한다. “최는 희와 함께 그녀의 집으로 가는 순간이 꼭 외계 생명체를 찾아 떠나는 우주여행 같다고 생각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누군가와 대화하기 위해 무거운 짐을 챙겼고, 서울 택시는 올림픽대로를 사방으로 가로지르며 교통 규칙이 없는 우주처럼 중력가속도를 충분히 느끼게 했다….” 피식 웃다가 어느새 온기가 스민다.

◇기괴하지만, 신선한 상상력

미국 작가 케이트 포크의 첫 소설집 ‘심장이 뇌를 찾고 있음’(원제 ‘Out there’)이 최근 국내 출간됐다. 2022년 출간 이후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주목해야 할 작가’로 꼽았고, 단편과 에세이가 ‘뉴요커’ ‘뉴욕타임스’ 등 언론에 실려 화제가 됐다.

뼈가 녹는 병, 행성을 집어삼키는 공허, 데이트 앱 사기에 이용당하는 인조인간, 마루에서 자라는 머리 등 기괴한 소재를 다룬다. 섬뜩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독자를 공포에 움츠러들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가 빠르게 도는 것 같은 활기를 준다.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톡톡 튀는 재기 발랄한 문체에서 신선함이 느껴진다.

포크의 소설은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미러’나 ‘러브, 데스+로봇’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영상화하기 좋은 작품이라는 점을 제작자들이 먼저 알아본 듯하다. 수록작 ‘저 너머에’와 ‘빅서’는 미국 OTT 훌루에서 드라마 시리즈로 방영할 예정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culture-life/book/2024/11/30/WTMJNMBQOFHYTGEDEUSTM7MTEA/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