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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2분 만에 잠들기'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4.12.19. 20:15 업데이트 2024.12.20. 00:27

일러스트=이철원


히틀러는 새벽 4~5시까지 잠을 못 자는 불면증 환자였다. 수면 무호흡 증세까지 있어 침실에 산소탱크를 두고 자주 산소를 들이마셨다. 손톱을 물어뜯고 피가 날 정도로 목을 긁어대는 등 신경쇠약 증세에 시달렸다. 히틀러가 전략적 후퇴를 주장하는 군 지휘관을 패배주의자로 몰아 처단하며 자멸을 재촉했던 건 불면증으로 인한 인지장애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히틀러의 맞수 윈스턴 처칠도 불면증 환자였지만 나름의 해법을 찾았다. 밤엔 3시간밖에 못 잤지만, 샴페인을 잔뜩 마시고 2시간 낮잠을 자는 것으로 수면 부족 문제를 풀었다.

▶사람들은 불면의 고통을 덜 수 있다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아편에 의존했다. 찰스 디킨스는 침대를 정북향으로 하고 매트리스 정중앙에서 잠을 청했는데, 숙면에 효과가 있다고 자랑했다. 일반인들이 많이 쓰는 고전적 방법은 숫자 거꾸로 세기다. 침대에 누운 뒤 의도적 숨 멈추기로 뇌를 산소부족 상태로 만든다는 사람도 봤다.

▶2차 세계 대전 중 미 해군에서 전투기 조종사가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잠들 수 있도록 돕는 ‘해파리 수면법’을 개발했다. 자신을 ‘의자에 걸친 해파리’라고 가정하며 이마부터 시작해 눈, 뺨, 턱, 목으로 내려가며 근육의 긴장을 풀고, 심호흡을 하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실험에서 6주 만 연습하면 조종사 96%가 2분 만에 잠에 들었다고 한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알려지며 관심을 끌고 있지만, 효과를 둘러싼 논란도 있다.

우리나라의 수면장애 환자는 110만명에 이른다. 수면 장애는 우울증, 비만, 치매 등 각종 질병을 일으키고, 인지 장애, 주의력 결핍을 유발해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 잠이 부족하면 근육 생성을 못해 특히 노년층 건강에 큰 위협이 된다. 옛날엔 수면제 처방이 고작이었지만, 최근엔 AI 기술을 활용해 수면 데이터를 분석, 수면의 질을 높이는 ‘슬립테크’(sleep+technology)가 각광받고 있다. 글로벌 가전 전시회인 CES에서 슬립테크 전용관이 등장할 정도다.

AI가 코골이 소리를 분석하고 베개 속 에어백을 조정해 머리 위치를 바꿔줌으로써 숙면을 유도한다. 생체시계가 현재 시각을 밤으로 인식하도록 멜라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파장의 빛을 쏘아준다. 수면 중 뇌파를 포착해 맞춤형 오디오를 들려줌으로써 숙면을 돕는다. 이미 상용화된 슬립테크 사례들이다. 2032년엔 슬립테크 시장이 1000억달러 수준으로 커진다고 한다. 100% 성공률 ‘2분 만에 잠들기’가 등장하면 인류에게 복음일 것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12/19/VWLROQMZXZG4FO5FTG2HXX3D6Q/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