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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50] 거울 속의 거울

문태준 시인
입력 2024.12.22. 23:54 업데이트 2024.12.23. 09:28

일러스트=이철원


거울 속의 거울

걸음마 시작한 손자 안고 거울을 본다
손자도 거울 속을 들여다본다
잠시 얼굴 돌려 골똘히 나를 올려다본다
거울과 현실 그 사이에, 내가 있다
거울을 넘어온 손자의 눈동자에 내가 가득 찬다
거울 속 얼굴 돌려 나를 올려다보는 손자를 나도 본다
내가 한결 더 맑아졌다
그 눈길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
-김완하(1958~)

김완하


‘눈부처’라는 말은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나는 사람의 형상을 일컫는다.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 대하고 바라볼 때 나는 그이의 눈동자에 비친다. 호수의 수면에 하늘이 그대로 고스란히 비치듯이. 발을 떼면서 걸음을 익히는 아기를 안고 시인은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속에 있는 아기가 시인을 바라볼 때, 눈을 맞출 때 거울 속에 있는 아기의 눈동자에 시인의 얼굴이 비친다. 아기의 눈동자는 거울 속의 깨끗한 거울 같다. 아기가 시인을 바라보니 시인의 눈길이 훨씬 맑아지고 부드러워지고 천진무구해진다.

우리는 눈빛만 봐도 알고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한다. 낯빛뿐만 아니라 눈빛은 심중(心中)에 있는 말을 전한다. 낯빛과 눈빛은 무언(無言)의 언어여서 마음속을 살필 수 있다. 천 마디 말을 하는 것 같다. 아기의 눈빛과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은 좀 더 온유해질 것이다. 매섭고 싸늘한 눈초리를 버리고 나도 아기의 눈길로 세상을 보았으면 한다. 그런 영롱한 눈길로 까치밥이 남은 감나무, 햇살이 내리는 툇마루, 사랑하는 사람, 이제 막 꽃망울을 맺은 수선화를 보리라.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12/22/BDBFFK2GFBFORFWOFAROLXGC3I/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