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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시리아 내전 그리고 세계의 내전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입력 2025.03.13. 00:17 업데이트 2025.03.13. 00:18

독재 정권 무너진 시리아, 그러나 집권한 반군도 민간인 학살
미국·러시아·주변국은 이익 따져 충돌… 정의·불의 구분 안 돼
시리아 평화 오면 인류에게도 희망… 수교 합의한 우리 역할 뭘까

/일러스트=이철원


지난해 12월 8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바샤르 알 아사드를 태우고 러시아로 향했다. 54년간 이어진 잔혹한 부자 세습 독재가 끝났다. 당초 아사드 정부는 내전을 극복하고 굳건하게 버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북서부에 웅거하던 HTS(Hayat Tahrir al-Sham, 이슬람 수니파 무장 단체)가 공세를 시작하자, 정권은 열흘 남짓에 무너졌다. 아사드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이가 시리아에서 드디어 독재가 종식되었다고 환호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리아를 이끈다는 인물들의 면면을 고려하면 환호는 아직 일렀다.

철권 독재자인 아사드에 맞서는 이들은 공포를 초월할 광신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내전이 시작되자 반군은 알카에다와 연계된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을 주축으로 집결했다. 이들 역시 시리아를 이단과 이교도로부터 정화하겠다고 나서며 민간인을 향한 끔찍한 폭력을 저질렀다. 시리아 내전은 빠르게 정의와 불의를 가리기 어려운 도덕적 회색 지대로 변했다. 이후 종파 갈등이 내전의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아사드는 알라위파와 기독교 등 시리아의 종교적 소수자들을, 반군은 다수의 수니파 무슬림 인구를 대표했다. 상대에게 밀리면 죽는다는 공포와 증오는 내전의 연료가 됐다.

지정학적 요충지인 시리아의 향방을 두고 국제사회도 본격적으로 분열했다. 아사드 정권의 우방인 러시아와 이란은 당시 정부군에 군사 지원을 개시했다. 명분은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를 막는다는 것이었다. 미국, 튀르키예,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사드에 맞서는 여러 반군 조직을 지원했다. 명분은 민주주의 증진부터 수니파 무슬림 보호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반군 사이에서 알카에다와 가장 깊숙이 연계된 무장 단체인 ‘알 누스라 전선’이 주도권을 잡고, 또 다른 일파가 아예 ISIS(무장 단체 이슬람국가)로 진화하면서 러시아와 이란은 반군 지원은 곧 테러리스트 지원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결국 알 누스라 전선은 집권 세력인 HTS가 되었다. 그 위원장인 아메드 알샤라는 아사드를 몰아내고 시리아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다. 아사드의 몰락에 환호하던 서구 사회는 그의 등장을 조심스럽게 인정하고자 했다. 실제로 전통 복장 대신에 양복에 넥타이를 하고 나온 알샤라를 보며 그가 알카에다와 이어진 과거를 끊어내고, 시리아를 안정화시킬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3월이 되며 기대는 악몽으로 바뀌었다. 과도정부군은 ‘구 정권의 잔당을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알라위파 지역인 라타키아에 진입했고, 잔인한 민간인 학살이 반복되었다. 인터넷에는 라타키아 진압 과정의 참상과, 피난처를 찾기 위해 러시아군 흐메이밈 기지로 몰려드는 민간인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넘실댔다.

어쩌면 시리아는 공통의 규칙이 붕괴해가는 오늘의 세계가 겪을 참상을 보여주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각 세력은 문명이나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무장하고 서로 총을 겨눈다. 주변 강대국은 도덕적 원칙보다는 이해관계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싸움을 이어간다. 서로가 생산하는 프로파간다 자료가 부딪치며 도덕적 냉소주의가 확산된다. 그렇게 사람들의 삶은 파괴된다. 시리아의 이야기는 비극적이게도 미얀마와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계속 반복되며 확대됐다. 아마 세계의 위기가 이대로 확대되면 ‘안전하다’는 제1 세계에서도 새로운 ‘시리아’가 출현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희망은 시리아에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현재 정치적 상황과 그 장기간 폭력의 역사가 시리아만큼 복잡한 곳은 세계 어디에도 찾기 힘들다. 그러니 시리아에서 평화를 회복할 수 있다면, 인류가 그래도 차이를 극복하고 문명을 지킬 수 있다는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건이다. 당장 묵은 증오를 씻을 수는 없지만, 시리아가 내전과 제재로 겪는 경제적 고통을 개선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다. 마침 서방이 아사드 정권 때 부과했던 대(對)시리아 제재를 상당 부분 해제하고 있고, 시리아 재건은 아무래도 HTS를 지원하는 우리 우방국인 튀르키예가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내전 이전에도 북한의 우방국이라 정치적 거리감이 엄청났던 시리아에 이제 우리가 다가갈 공간이 생기고 있다. 시리아 재건과 평화 회복에서 우리만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고민해볼 때다.

바샤르 알 아사드
아메드 알샤라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3/13/BB76IN5HQNHQBKZN2LJY4MNN4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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