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과 바르셀로나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입력 2025.04.04. 00:02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가로 130m 세로 130m 크기 정사각형 블록이 격자형으로 배치된 도로망을 가지고 있다. ‘만사나’라고 불리는 이 도로망은 건축가 ‘일데폰스 세르다’가 1859년에 디자인했다. 정사각형 블록의 안쪽으로는 중정(中庭)이 있어서 거주자들은 조용한 중정을 공유하면서 공동체를 완성할 수 있게 계획되었다.
그런데 이 도로망이 특별한 진짜 이유는 정사각형의 모서리 부분이 45도 각도로 잘려 있다는 데 있다. 단순한 사각형 블록 모양과 달리 모서리가 따져 있는 모양이기 때문에 사거리 빈 공간의 개방감이 훨씬 크다. 계산을 해보면 단순한 직각 모서리 블록으로 만들어진 사거리보다 만사나 블록이 만드는 사거리는 빈 공간이 5배나 더 넓다. 덕분에 사거리가 광장처럼 시원한 느낌이 든다. 우회전, 좌회전을 할 때도 운전하기 편하고 앞으로 만나게 될 길도 잘 보이는 장점이 있다.
바르셀로나의 만사나 도로망과 비교되는 것은 뉴욕의 도로망이다. 뉴욕의 도로망은 바르셀로나보다 약 50여 년 전인 1811년에 건축가 ‘존 랜들’이 디자인했다. 뉴욕 도로망의 특징은 가로 240m 세로 60m의 가로로 긴 직사각형 블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뉴욕의 블록 한 개의 면적은 1만4400㎡ 정도이고 바르셀로나 블록 한 개의 면적은 1만6100㎡ 정도로 크기도 비슷하다.
하지만 블록 모양은 뉴욕은 직사각형인 반면 바르셀로나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팔각형이다. 그 차이점이 뉴욕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뉴욕은 격자형 도로망을 만들 때 남북 방향 도로는 ‘애비뉴’, 동서 방향 도로는 ‘스트리트’로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맨해튼은 남북 방향으로 긴 섬이다. 그러다 보니 교통량은 남북 방향이 많다. 따라서 남북 방향으로 난 애비뉴의 폭은 넓다.
반면 폭이 좁은 동서 방향으로는 교통량이 적어서 도로 폭이 좁다. 남북 방향으로 난 애비뉴의 폭이 넓다 보니 낮 시간 빛이 많이 든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있어도 점심시간 때 애비뉴는 밝다. 2000년 전에 만들어진 도시인 로마는 보통 50m마다 교차로가 나온다. 반면 뉴욕과 바르셀로나는 각각 240m와 130m마다 교차로가 나온다. 로마는 사람이 걸어 다니던 시절에 만들어진 도시다. 그래서 길도 구불구불하고 교차로 간격이 좁다. 반면 뉴욕과 바르셀로나는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도시다. 마차가 다녀야 하는 뉴욕과 바르셀로나는 직선의 도로망을 가지고 있고 교차로 간격도 넓어졌다.
자동차가 발명된 후에 만들어진 강남의 도로망은 직선의 격자형 도로망이고 사거리 사이 간격은 800m다. 뉴욕의 240m의 3배 정도다. 로마, 뉴욕, 강남 각 도시의 교차로 간격은 50m, 240m, 800m로 다르지만, 보행·마차·자동차라는 각 시대의 교통수단을 고려해서 보면 동일하게 40초대 후반이라는 얼추 비슷한 시간 거리를 가진다. 도로망은 도시가 만들어진 당대의 주요 교통수단이 결정한다.
뉴욕에서는 볕이 잘 드는 애비뉴를 따라서 걷다 보면 60m마다 새로운 스트리트 풍경이 펼쳐진다. 시속 4킬로미터로 걷는 보행자는 1분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된다. 덕분에 걷는 데 지루하지 않다. 뉴욕 맨해튼은 촘촘히 건설된 지하철과 1분마다 풍경이 바뀌는 도로망 덕분에 걷기 좋은 보행 친화적 도시가 되었다. 실제로 뉴욕에서는 스트리트 20개 정도를 지나는 20분 정도 거리는 웬만해서는 걸어서 다닌다. 뉴욕 블록의 가로 길이 240m는 마차에 맞추어진 교차로 간격이고, 세로 길이 60m는 로마의 50m 교차로 간격과 비슷한 보행자를 위한 교차로 간격이다. 그렇게 뉴욕은 마차와 보행자 둘 다를 만족시키는 도로망 패턴이다. 뉴욕은 물류의 효율성과 보행 친화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도시다.
향후 우리는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걷기 좋은 도시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걷는 사람들은 가게에 들어가서 소비를 한다. 자동차를 탄 사람은 주차하기 편한 대형 쇼핑몰에만 간다. 자동차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는 거대 쇼핑몰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는 대기업만 돈을 벌 수 있는 도시다. 현대인은 온라인으로 대부분 쇼핑을 한다. 온라인 쇼핑이 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시는 천문학적 자본으로 온라인 쇼핑 플랫폼을 구축한 초거대 IT·유통 기업만 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좋은 사회는 소자본 자영업자가 많은 사회다. 유산을 물려받지 않아도 창의적 아이디어와 적은 돈으로 창업하고 돈을 벌 수 있을 때 부의 이동 사다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의 양극화를 깨뜨려야 한다. 그런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걸어서 근처 작은 가게에 들어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최고의 소비자 유인책은 ‘자연’이다. 과거에는 들판에서 농사를 지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자연은 지천으로 깔린 노동의 현장일 뿐이었다. 하지만 현대인은 자연과 격리되어 도시 안 실내 공간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지금은 자연이 최고의 럭셔리다.
자연을 접하는 공원 근처가 최고로 소비자를 유인하기에 좋은 상업지다. 도시 내에서 공원의 접점을 높일 좋은 방법은 정방형보다는 직사각형, 직사각형보다는 좁고 긴 선형의 공원을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포에 있는 ‘경의선숲길 공원’이다. 이렇게 60m마다 교차로가 있는 도시를 만들고, 한쪽에는 선형의 공원과 연계된 상업지구가 있을 때 걷기 좋은 도시가 된다. 그럴 때 소규모 자영업자가 돈을 벌 수 있는 도시 공간이 된다. 이렇듯 도로망 패턴은 사회의 경제구조를 결정하고, 경제 구조는 사회의 모습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도시 공간은 향후 수백 년 동안 그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건축 공간이 중요한 것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4/04/QLXY6RIDIRDNBII5AX7XNATLAE/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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