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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정신과 가는 어린이들

김민철 기자
입력 2025.04.27. 20:41 업데이트 2025.04.27. 23:49

일러스트=이철원


매년 신학기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에는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다. 바로 복통이다. 하지만 상당수는 아무리 검사해도 뚜렷한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 단순한 신체적 증상처럼 보이지만 원인을 찾아보면 아이들 마음속 불안과 긴장 때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학기 스트레스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증상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멍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드는 수치와 자료들이 늘고 있다. 서울 강남 3구에 사는 9세 이하 아동의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이 4년 새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영어 유치원 입학을 위한 ‘4세 고시’, 초등 의대반에 가기 위한 ‘7세 고시’의 진원지여서 그런 결과가 나왔을 수 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약 처방 환자 수가 5년 만에 2.5배 급증해 치료제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는 뉴스도 마찬가지다. ADHD 진단 기준이 명확해지면서 환자가 늘었다고 하지만 일부 학부모가 ADHD 치료제를 ‘집중력 높이는 약’ ‘공부 잘하는 약’으로 오인해 오남용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한다. 조기 교육 과열이 낳은 걱정스러운 세태다.

▶현장 교사에 따르면 우울증·ADHD 등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학생이 전에는 한 학년에 한두 명 정도였는데 최근엔 한 반에 두세 명 정도로 늘었다고 한다. 초등 1·4학년 때 ‘정서행동특성검사’를 해서 정상 범위를 벗어난 아이들을 잡아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기 사교육 영향을 부인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주변에 소아 정신건강 전문을 표방하는 의원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육아정책연구소는 얼마 전 영유아기 사교육 영향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영유아기 사교육이 초등 1학년의 언어 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은 없고, 오히려 아이들 자존감 등 정서적인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었다. 상식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한 소아정신과 교수는 “유아기에 과도한 선행 학습은 뇌 기초 공사를 할 시기에 고층 빌딩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럼에도 상당수 학부모가 불안감 때문에 조기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에 따른 심적 압박감이 운동장에서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을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만들고 있다. 영유아부터 어린이·청소년기까지 조기 사교육이 미치는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정밀하고 다양하게 조사해 공개해야 한다. 무분별한 조기 사교육 열풍에 이것만큼 경종을 울릴 것이 없을 것 같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4/27/UK4Y4JJTYVFBZJAKBYIS3VZE4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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