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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스토킹의 정신세계

최원규 논설위원
입력 2025.06.16. 20:31 업데이트 2025.06.16. 23:04

일러스트=이철원


3년 전 자신이 스토킹하던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 전주환은 1심 재판 중 반성문을 10여 차례 냈다. 피고인이 반성하면 감형 사유가 될 수 있다. 재판부는 심리 전문가를 불러 반성문에 진정성이 있는지 물었다. 전문가는 “그렇게 보기엔 무리”라고 했다. “전주환이 자기 감정엔 풍부히 반응하지만 타인의 입장이나 반응엔 공감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는 이유였다. 전주환에겐 결국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그가 실제로 반성했는지, 재범 가능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기존 연구 결과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쪽이다. 2000년대 초반 독일 심리학자 이사벨 본드락이 스토커 100여 명을 면접해 심리 상태를 분석했다. 그런데 스토커의 80%가 뜻을 이루지 못해도 중단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들은 피해자와 함께해야 할 운명이라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신 세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태를 상대에 대한 병적인 소유욕과 집착으로 설명한다. 상대를 물건처럼 소유하고 싶어 하고 이를 거부할수록 강하게 집착한다는 것이다. 이 집착이 강해지면 ‘망상장애’에 이른다고 한다. 현실에 대한 왜곡된 해석으로 잘못된 신념이 생긴 상태다. 상대가 거절 의사를 표시하면 이를 긍정적 메시지로 곡해하고, 상대가 되레 자신의 집착을 원한다고 착각하는 식이다.

▶스토킹 범죄자들의 이런 집착은 가정·이성 관계 등에서 발생한 감정 결핍이 피해의식으로 이어진 데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4년 전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이 이와 비슷한 경우다. 그는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여성이 연락을 끊고 만나주지 않자 범행을 저질렀다. 수사기관은 그의 범죄엔 과도한 집착, 피해의식적 사고, 보복 심리가 깔려 있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노원 세 모녀 살인 사건’ 직후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경범죄로 처벌하던 스토킹 범죄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스토킹 범죄는 끊이지 않는다. 2021년 1만4509건이던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지난해 3만1947건으로 늘었다. 대구에서 스토킹하던 여성을 살해한 40대가 사건 발생 나흘 만인 엊그제 붙잡혔다. 이 남성도 여성이 만나주지 않자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과도한 집착과 피해의식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스토킹의 정신세계에 대한 맞춤형 대처 방안이 필요할 듯하다.

전주환
김태현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6/16/NISW6N4HJ5GGZO24UFWPUIWOHQ/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