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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84] 모국어

문태준 시인
입력 2025.08.17. 23:37 업데이트 2025.08.17. 23:51

일러스트=이철원


모국어

가출했다 잡혀 온 내 손모가지 꽉 붙들고
엄마는 딱 한마디 했다
집에 가자이,
아무 말 못하고 엄마 손에 끌려갔다
목포역 앞이었다

머를 좀 잘못 알았는갑소,
잘 좀 알아보쇼이,
우리 애기는 절대로 그럴 애가 아니랑께요,
경찰서 안이었다

머시라도 묵어야 심을 쓰지,
한 입만 떠멕이믄 안 되겄소라우,
산통 이틀째, 애도 낳기 전에 미역국부터 먹은
신천리연합의원이었다

평생 단 며칠도 집을 못 비우던 엄마는
일생에 단 한번 순례하듯 마실 다녔다
일곱집 돌아가며 밥그릇 채우던
석가모니 제자들처럼

아이고 내 새끼 왔냐,
맨발로 뛰어나오던 가리봉동이었다
복숭아 살 같은 물컹한 장마 드시고
홍시 같은 늦가을도 달게 드시고
겨울이 집 앞에 봄을 부려놓자마자
되얐다,
인자 집에 갈란다,

탁발 순례 마치고
큰오빠 집으로 간 지 한말 만에 영영 가셨다
혼자서만 가는 나라
언제 갈지 모르는
어딘지 몰라 찾아갈 수도 없는
집 우(宇)
집 주(宙)

-김해자(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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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모국이요, 엄마의 말씀은 모국어이다. 이 세상의 딸과 아들이 태어난 나라이며, 딸과 아들이 태어난 나라의 언어이다. 엄마는 사랑과 인내의 나라이다. 딸과 아들은 삐뚤빼뚤한 육필 같은, 땅속에 묻힌 거대한 뿌리 같은 엄마의 말씀을 듣는다.

시인은 엄마로부터 들었던 말을 떠올린다. 때로는 꼬챙이처럼 엄하고 단호했다. 때로는 두둔하고 감싸고돌았다. 때로는 걱정으로 애태웠다. 그러고 보면 모든 때에 엄마는 늘 노심초사했고, 모자람이 없나 살폈다. 엄마의 폭포와도 같은 힘은 어느 간곡한 마음의 절벽에서 쏟아지는 것일까. 엄마가 펼쳐 놓는 자애는 바닷가 모래사장보다 넓고 끝없다.

김해자 시인이 시 ‘월식’에서 “저승길 밟은 맴으로 살아보자, 어디까정 갈지 모르겄지만 살다보믄 무슨 수가 있겄지. 그냥 살기로 혔어. 아프다 아프다 해도 죽게 아프지는 않으니께 살아야지”라고 쓴 것처럼 이 세상의 엄마는 꺾이지 않고 세상을 향해 말한다.

김해자 시인
시 ‘월식’ 시집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8/17/A44EXC4EWBCPZON42WXV2OLK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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