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
입력 2025.09.28. 23:38

그리운 날씨
날씨와 나, 둘만 있어
다정했다 매서웠다 날씨의 기분
나는 날씨와 둘만 살아
날씨에 따라 당연히 옷을 갈아입고
춤춰줄까 물구나무서줄까 물어봐
날씨는 오늘 화가 많더니 울었어
나는 그 변덕을 사랑해
화의 날과 수의 날이 동시에 진행되면 너무 좋은 날
손뼉을 치면서 햇빛과 함께 빗줄기 맞으러 나가주지
나는 날씨를 혼자 두는 게 미안해서 늘 불면이야
날씨와 나 늘 둘이지만
아침이면 말하곤 해
날씨야 내가 너를 열어줄게
멀고먼 곳으로 열어줄게
날씨는 오늘 엄마 사라진 뒤의 나처럼
밝았다 잠들었다 바람 불었다 깨어났다
나 사라진 뒤의 어느 날에도 어제의 날씨처럼 그렇게
연못에 몸을 담그고 머리칼을 강아지처럼 흔들며
내일은 둘이 뭐할까?
미지근한 구름 속에서의 축축한 키스
화내고 파란 병 깨고 여름 구름
내 창문을 쾅쾅 치면 쫓아내고 싶지만
날씨에 촘촘히 박혀 떠나간 나날의 씨앗들이
어디서 활짝 피었는지 궁금하진 않아
오늘 지나고 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날씨에게
하루도 같은 하늘을 준비하지 않은
나의 날씨에게
어제 날씨는 없었던 것처럼
나는 늘 말해
이 세상에는 너와 나 둘이면 충분해
다른 건 필요없어
-김혜순(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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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그날의 기상 상태는 바뀌고 또 바뀐다. 휘어서 구부러진 곳이 많은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햇살이 밝게 서고, 바람이 잠잠하고, 구름이 떼로 건너오고, 바람이 일어나고, 빗방울이 떨어지고, 다시 햇살이 선다. 하루에도 몇 차례 구름과 바람과 기온이 변화한다. 꼭 사람의 내면 같다. 감정도 날씨처럼 높아졌다 낮아졌다 한다. 우리가 날씨를 겪는 것처럼 누군가 나의 내면을 관찰한다면 아마도 언덕을 오르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그러한 날씨의 바뀜을 변덕이라고 부르지만, 그 변덕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변덕이라는 것이 하나의 몸이 갈아입는 그때그때의 옷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빗대자면 기분도 옷에 다름 아닐 테다. 어느 때엔 없던 정이 생겨나고, 어느 때엔 매몰차고 유리 조각처럼 날카롭고, 어느 때엔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고, 어느 때엔 환호하고 갈채를 보낸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변덕스러운 내면을 사랑한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9/28/IGNZ3GGVHFGGRPOJUAJTMEKOHY/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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