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입력 2025.10.13. 23:33
스마트폰 들고 '날 봐달라' 외치지만 고립된 섬처럼 모두 외로워
소통의 시대에 소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역설의 세상을 산다
“저 외로워요.”
아들이 보내온 문자메시지에 어머니는 겁부터 덜컥 나신 듯했다. 그 아들이 누군가 하면 바로 내 동생인데, 외롭다는 말을, 그것도 어머니에게, 할 사람이 절대 아니다. 이건 요즘 유행하는 ‘제미나이’ 장난이 분명하다. 제미나이는 구글이 개발한 AI 프로그램으로, 꽤 인간적인 대화 기능을 지녔다. 뭔가를 질문하면 금방 진지하고 충실한 답변을 내놓는다. 언젠가 동생이 스마트폰으로 시연해 보인 바, 이렇게 한다. “…가 뭐야? 그게 뭐냐니까? 빨리 말해봐.” 그러면 몇 초도 안 돼 답이 돌아온다. 그 답변에 대해 또 격의 없이 물으면 또 답이 온다. 내 눈길을 끈 건, AI 답변 내용이 아니라, AI와 ‘대화’하는 동생 모습이다. 그는 기계와 말하고 있지 않다. ‘메시지’가 아니라 ‘교감’을 위한 소통을 꾀하고 있다.

이번에도 제미나이에 물어봤을 것이다. “어머니가 귀찮게 자꾸 전화하고 안부 문자 보내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어? 방법 좀 알려줘 봐.” 그러자 제미나이가 이건 어때요, 라고 답을 제시했을 법하다. 내가 한번 (처음으로) 점잖게 물어봤더니, 점잖게 대답해 왔다. “어머니의 잦은 전화에 대한 고민, 정말 힘드시겠어요. 이럴 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현명하게 상황을 풀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몇 가지 현실적인 방법을 제안해 드릴게요.” 그 방법 중 첫 번째가 ‘솔직하고 부드럽게 이야기하기’. “엄마, 저를 걱정하고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제가 요즘 바쁜 일이 많아서요. 전화 올 때마다 바로 받지 못하면 엄마도 걱정하시고, 저도 마음이 쓰여요.”
쯧쯧, 마음의 대본에 없는 이 답변보다는 ‘저 외로워요’가 훨씬 정직하고 효과적이다. 누군들 그런 문자 받으면 당장은 다시 전화하기가 두렵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쓰고 보니 어쩌면 동생 문자가 AI 답변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은 진짜로 ‘솔직하고 부드럽게’ 이야기한 거였는지 모른다. 다만, ‘저도 외로워요’라고 썼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 어머니도, 동생도, 나도, 모두 외로운 존재다. 그러나 109(정신 건강 상담 전화)를 누르지 않는 한, 보통 사람은 외롭다고 직설하지 않는다.
외롭다는 게 무엇인가? 러시아 낭만주의 시인 레르몬토프는 “영혼이 힘든 순간에/ 손 내밀 곳 없구나”로 자신의 비관론을 정리했다. 명상시 ‘나 홀로 길을 나서니…’에 보면, 대지는 하늘에 귀 기울이고, 별은 별과 서로 이야기 나누는 가운데, 시인 홀로 길을 걷는다. 세상천지에 그에게만 영혼의 얘기 나눌 상대가 없다. 시인은 모든 소리와 현상에 귀 기울여 화답하건만, 시인에게는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다. 다분히 염세적이던 레르몬토프는 스물일곱 살에 자살과 다를 바 없는 결투로 생을 마감했다.
20세기 혁명기의 선동 시인 마야콥스키도 떠올릴 만하다. 마야콥스키는 189㎝ 거구였고, 목소리도 우렁차고 발걸음도 활기찼다. 항상 우레 같은 목소리로 성큼성큼 걸으며 행진의 리듬을 선창하던 군중 시인이다. 앞서 언급한 레르몬토프 시를 두고, ‘그러니 함께 걷자’는 선동 연애시라며 비웃던 반감상주의 모더니스트다. 그가 속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서른여섯 나이로 어느 날 갑자기 권총 자살할 때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자살한 다음에야 사람들은 그의 시가 외로움의 일관된 호소였으며, 죽음의 오랜 예행연습이었음을 깨달았다.
“들어보세요!/ 별이 뜬다는 건/ 누군가 그걸 필요로 한다는 뜻 아니겠어요?/ 누군가 별이 있었으면 한다는 뜻 아니겠어요?” 별은 왜 뜨는가? 사람은 왜 태어나는가? 별에 빗대어 자신의 존재 이유를 해명한 이 절규에 사람들은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시대의 시인’ 마야콥스키가 시대와 소통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역설이다.
소통의 시대에 소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실은 우리도 역설의 세상을 살고 있다. 개인의 삶은 여러 양태의 매스미디어를 매개로 타인의 삶과 깊숙이 엮였지만, 그 바람에 각자 고립된 섬이 되어버렸다. ‘나 홀로 길을 나서니’, 저마다 손에는 스마트폰, 귀에는 이어폰이다. 바깥세상 추세에 주파수를 맞춰가며 소외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면서도 정작 옆 사람과의 진정한 소통 창구는 차단했다. 외롭고 불안해하면서 지독히 폐쇄적이다. 기계에 대고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내 얼굴 좀 봐달라고 외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보거나 듣지 않는다. 내 얘기를 마음으로 들어주는 이 없어, 인간은 고독해진다.
레르몬토프 ![]() |
나 홀로 길을 나서니… ![]() |
마야콥스키 ![]() |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10/13/FDTVLFGMXRCB7BUXI74MD6M7CI/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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