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 소설가
입력 2025.12.03. 23:45
키오스크의 효율? 사람은 대화하며 살아 있다고 느껴야 해
기계를 못 다룬다면 '쓸모없는 존재'라는 외로움이 밀려온다

얼마 전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전직 판사가 혼자 사는 집에 전직 변호사와 전직 검사가 법복을 입고 모인다는 이야기였다. 기이하지 않나? 재판을 하기 위해서란다. 재판할 때만 살아 있는 느낌을 받는다는 그들. 은퇴한 법조인이라 실효성은 없는 모의재판이지만 재판은 재판이라고 했다. 그렇게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을 잠시 잊는 것이다. 심지어 건강에도 좋았다. 고혈압과 위염 같은 지병이 치유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그들은 재판 놀이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치료하고 있는 것이었다.
며칠 전 본 연극 ‘트랩’ 이야기다. 스위스 작가 뒤렌마트의 단편소설 ‘사고(Die Panne)’를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나는 ‘모의재판’이라는 설정이 인상 깊었다. 연극을 보고 나니 현실의 어딘가에서도 은퇴한 법조인들이 모의재판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 있는 느낌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이란 존재는 살아 있다고 해서 살아 있는 게 아니니까. 계속 살아가려면 살아 있음을 느껴야 한다. 가장 간편한 방법이 대화다. 은퇴한 법조인처럼 논쟁적이고 전문적인 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화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그게 일상의 소소한 대화라도 좋다. 마음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 ‘수다 계산대’를 만들었다. 말 그대로 수다를 떨면서 계산할 수 있는 계산대다. 계산하면서 날씨나 영화, 제철 음식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네덜란드의 어느 수퍼마켓에서 이런 걸 만들었다. 클레츠 카사(Klets-Kassa)라고 쓰인 곳으로 가면 계산원과 손님은 계산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앞사람의 수다가 길어지면 뒷사람은 기다려야 한다. 클레츠 카사에서는 수다를 떨 권리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 수퍼마켓에서 클레츠 카사를 담당하는 계산원을 ‘외로움에 맞서는 수퍼마켓 점원’으로 소개한다. 여기서 말하는 ‘외로움’이란 키오스크로 대변되는 말이 필요 없는 효율적인 방식일 것이다. 수다 계산대는 2019년 네덜란드 정부에서 펼친 ‘외로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캠페인에서 비롯했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나라에서 펼치고 있는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한 정서적 돌봄 장치라 하겠다. 2018년 영국에서는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했고, 2021년 일본에서는 고독·고립 대책 담당실을 신설했다. 2024년 서울에서는 돌봄 고독 정책관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의 외로움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어제의 나는 솥밥집에서 또 하나의 외로움을 목격했다. 키오스크로 주문과 결제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식당이었다. 내 앞에 앉은 여자 노인은 키오스크를 다루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알고 싶었던 것 같은데 메뉴의 이름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 같았고, 이것저것 눌러보는데 잘되지 않았다. 나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창피해하는 것도 느껴졌다. 주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시도했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노인이 몇 분 넘게 그러고 있는데도 직원은 보고만 있었다. 결국 노인은 주문을 포기하고 짐을 챙겨서 식당을 나갔다. 나는 참을 수 없이 외로워졌다. 노인의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또 언제 외로움을 느끼는가. ‘어르신 키오스크 교육’ 같은 걸 볼 때 그렇다. 키오스크 교육을 할 게 아니라 교육하지 않아도 쓸 수 있게 직관적으로 만들지 그랬나 싶다. 기계를 대충 만들어 놓고 인간에게 이해하라고 하기보다 인간을 충분히 이해한 후 기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매장에서 바코드로 물건을 찍고 있거나 식당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있으면 가끔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키오스크를 제대로 못 다뤄서 주문을 못 한다면 더 외로울 것이다. 내가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하찮음을 느낄 것이다. 어르신 디지털 교육보다 수다 계산대를 놓는 쪽이 인간을 위하는 길이다. 외로움에 맞서는 계산대가 가끔 있어도 좋겠다. 외로움을 반대하는 사람으로서 드리는 말씀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12/03/6UZ6U2Y3VREVTCJASIYA5OZPXE/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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