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절주절

(토픽이미지 사용 신문기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닥터 지바고·해리 포터… 이 책들, 한땐 禁書

 

^^

chosun.com 2013년 11월 2일 토요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닥터 지바고·해리 포터… 이 책들, 한땐 禁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자살 조장, '보바리 부인' '율리시스' 죄목은 음란
카프카는 자신의 글 불태워라 유언… 권력·자기 검열에 핍박당한 책 소개

 

금서의 역사 

베르너 풀트 지음|송소민 옮김 | 시공사|408쪽|2만원


	금서의 역사 책 표지 사진

 

1774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됐을 때, 독일의 한 지역신문이 낸 서평은 이렇다. "이런
종류의 책은 시민을 보호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모든 정부에서 금지해야 한다."

 

이듬해 1월 라이프치히 법정은 작센 지방에 이 소설의 인쇄, 영업, 판매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린다. "재치
있고 섬세한 표현법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으며 "자살을 옹호하기 때문에 남의 영향을 잘 받는
사람들에게 유해하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당시 자살 신드롬이 일었다. 유명인의 죽음을 따라 하는

'베르테르 효과'란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

 

하지만 막을수록 책의 가치는 올라갔다. 젊은 독자들 사이에선 감성적인 연애 소설로 선풍적 인기를 구가했
고, 불법 인쇄업자들은 서둘러 재판(再版)을 찍어냈다. 책은 여러 문화권의 언어로 빠르게 번역돼 결국 최고
의 독일 소설로 자리매김한다.

 

◇찢고 불태우고… 책에 대한 억압의 역사

 

신간 '금서의 역사'는 책의 발명과 함께 끈질기게 이어져온, 책에 대한 억압의 역사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불온'이란 딱지가 붙은 채 금지되고 찢기고 불태워진 온갖 금서에 대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담았다. 금서
의 역사가 곧 인간 기록의 역사. 기원전 3000년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이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선왕의 이
름을 파내게 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책이 금서 목록에 올랐다.

 

먼저 가장 강력한 금지인 '자기 검열'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작가 스스로 검열자가 돼 작품이 세상 빛을
보지 못하도록 단절시킨 사례들이다. 애인이 죽자 무덤에 사랑의 시를 함께 묻어버린 단테 가브리엘 로세
, 냉혹한 평가에 마음이 상해서 장롱 깊숙이 저작을 넣어둔 채 눈을 감은 마르셀 프루스트…. 프란츠 카
프카는 임종 직전 자신의 일기와 원고, 편지 등을 남김없이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닥터 지바고·해리 포터… 이 책들, 한땐 禁書
△토픽이미지  


로마시대에는 이교(異敎)의 뿌리가 된다는 이유로 많은 책이 잿더미가 됐다. 신앙 교리와 일치하지 않는
모든 책이 '악'으로 분류됐고, 이성을 일깨우는 책을 불태우는 방식으로 종교 권력은 강화됐다. 대제국을
건설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지은 무세이온 도서관이 보관하던 40만 편이 넘는 필사본과 9만개
의 두루마리 문서가 기독교 광신자에 의해 한꺼번에 불살라졌다.


16세기는 유례없는 분서(焚書)의 시대였다. 교회는 유럽 전역의 인쇄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종교 개혁 서
적의 홍수를 막기 위해 시시때때로 금서 목록을 만들어 책을 태웠다. 금서 목록 감정원이라는 직업도 있
었다. 역사상 가장 '악명높은' 감정사로 남은 자크 마리 조제프 베예스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을 겨우
133쪽까지만 읽고 "간통을 노골적으로 부추긴다"고 덮어버린다. 1864년 스탕달의 모든 작품이 금서 목록
에 올랐다.


◇"음란해서" 혹은 "권력 유지를 위해"


정신의 지배를 위해, 종교적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권력 유지의 방편으로 인류는 책을 검열하고 불태웠
다. 지금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이 다양한 이유로 금서 목록에 올랐다. 실재 인물을 교묘하게 소설 속
인물로 등장시켜 사생활을 폭로해서(클라우스 만의 '메피스토'), 주인공이 불륜을 저지른 후 예전보다 더
아름다워졌다고 묘사했다는 이유로('보바리 부인'), 열여섯 살 소년인 주인공이 우연히 만난 창녀에게 동
정을 잃었다는 묘사 때문에('호밀밭의 파수꾼') 문제가 됐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도 자칫 빛을 못 볼 뻔했다. 음란성이 있다는 이유로 출판인들이 몸을 사렸기
때문. 우여곡절 끝에 파리의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 서점 사장이 출판했으나 곧 다시 벽에 부딪혔다. 유
럽과 미국으로 보내진 책들은 도착하자마자 압수되거나 불태워졌다. 초판이 나온 지 11년 후인 1933년
뉴욕에서 '율리시스'를 예술작품으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이 제기된다. 재판부는 이렇게 판결했다. "많은
부분에서 거의 구토제와 같은 작용을 할 수는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성욕 증강제와 같은 작용을 하는 부
분은 없다. 고로 미국에 '율리시스'의 반입을 금할 동기가 없다."


◇금서의 역사=인류 기억의 생존사


하지만 책을 불태우면 작가의 이념까지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한 권력자의 확신은 전적으로 틀렸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금지된 책 중에서 읽히지 않은 게 없었고, 압류된 서적들은 다른 어느 곳에서든 찾을 수 있었
다. 한때 금서였던 책들은 세월의 검증을 거치고 독자의 찬사를 꾸준히 받으며 고전으로 살아남았다. 저
자의 메시지도 결국 이것. 독일 문학평론가인 베르너 풀트는 "금서의 역사는 단순히 억압의 사슬, 파괴된
작품과 살해된 작가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권력에 대항해 언어가 거둔 승리의 연대기"라고 강조한
다. 금서의 역사는 다름 아닌 책에 저장된 인류 기억의 생존사라는 얘기.


로마 제정시대 역사가 타키투스는 불멸의 두 문장을 남겼다. "한순간의 권력이 미래 시대의 기억마저도
지울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실컷 비웃어도 좋다. 권력자는 스스로 수치에 도달하고, 처
벌당한 자의 명성은 커질 뿐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어쩐지 숙연해진다. 인간의 두려움이 몰살시키
려 한 금서의 역사와, 그럼에도 꿋꿋이 살아남은 책의 위대함 때문에.

 

원문: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02/2013110200291.html

(허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