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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좌

(기사) 예쁜 것만 사진(寫眞)은 아니다

조인원의 사진산책
예쁜 것만 寫眞은 아니다

입력 : 2014.10.16 05:38
[출처] 프리미엄조선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補正·합성으로 만든 童顔·풍경은 사진 아니라 '이미지 變形'일 뿐
립스틱 서툴게 바른 여중생처럼 애교 넘은 속임수는 촌스러운 것
사실성·정확성 본질인 기록 매체… 있는 그대로 찍고 보는 게 어떨까

 

누구든지 예쁘고 싶다. 하지만 모두가 예쁠 순 없다. 모두가 장동건이나 김태희처럼 생겼다면 세상
은 비슷한 얼굴들로 넘쳐나서 서로 쳐다보기가 지겨울 것이다.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에 호기심이나 질투 그리고 설렘도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도나도 예쁘고 멋진 모습
만 보여주려고 한다. 그것은 성형 수술이나 값비싼 치장이 없이도 가능하다. 찍은 사진을 수정하는
사진 보정(補正) 기술이 전보다 훨씬 쉬워졌기 때문이다.


자기 사진은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과 SNS가 일상인 요즘은 실시간으
로 사진을 노출하고 모르는 사람도 볼 수 있도록 공유한다. SNS에선 서로 '좋아요'를 눌러주니 멋진
모습만 보여주려는 욕심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카메라 대신 대부분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으로 수정
하다 보니 지나치게 보정이 많다. 얼굴에서 잡티나 주름살은 사라지고 뚝딱 십년은 어려보이는 '동안
(童顔)'이 만들어진다. 뽀얀 화면에 화사한 필터 효과를 주거나 갈색의 세피아(sepia)톤으로 사진 분
위기도 바꾼다. 과거처럼 복잡한 포토숍(Photoshop) 프로그램이 없어도 쉽고 빠르게 사진을 고칠
수 있다. 스마트폰의 수많은 사진 보정 앱(app)은 몇 번의 손가락 터치만으로도 멋진 모습으로 바꿔
준다. 언뜻 멋져 보이는 그림으로 사진을 바꾸는 보정 기술은 이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열 살짜
리 초등학생들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지의 변형이지 사진은 아니다.


누구든 멋진 풍경을 찍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멋진 풍경을 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좋은
풍경 사진도 쉽게 찍히지 않는다. 풍경 사진을 제대로 찍기 위해선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로 들어설 줄 아는 용기와 햇빛과 구름의 이동을 관찰하고 기다릴 줄 아는 끈
기가 있어야 하고 나무와 풀꽃을 흔드는 바람까지도 느낄 줄 알아야 하며 이것을 카메라 프레임 안에
정리해서 자기의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시간과 땀을 투자해서 기다리고 준비해도 가끔
한 장 건질까 말까 한 것이 풍경 사진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그런데 요즘 인터넷엔 비슷한 분위기의 그림엽서 같은 풍경 사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같은 시간
과 장소를 찍은 것도 아닌데 노을진 하늘은 언제나 빨갛고 사진 밖으로 튀어나올 듯 흐르는 구름과
그림자는 입체적이고 활기가 넘친다. 이 사진들 또한 과다한 보정 작업을 했거나 HDR(High
Dynamic Range) 기법으로 촬영된 사진들이다. HDR은 노출의 차이가 나는 같은 장면의 사진 세 장
을 합성해서 한 프레임 안에서 부분적인 계조(階調·gradation)를 늘려 입체적인 한 장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사진 합성이다. 초기에 나왔을 땐 고해상도의 DSLR 카메라로 촬영해서 다소 번거로운 사진
보정을 해야 했지만 이젠 휴대전화에 내장된 카메라로도 쉽게 찍는 사진이 되었다.


이러다 보니 마치 붓으로 덧칠한 듯 보이는 비슷한 풍경 사진들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이것들도 언뜻
보면 예쁜 그림처럼 보이지만 사진은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사진의 리터칭(retouching·보정) 기술
은 앞서 가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그림 같은 사진에만 향해 있고 정작 진짜 사진에서 멀어진다. 진짜
사진이란 그림과 어떻게 다를까?


애초에 사진은 가장 사실적인 모습을 기록하도록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문자(文字)를 만들기 훨씬 전
부터 그림으로 세상을 재현하고 보여주는 데 익숙해 있었다. 하지만 카메라가 나오자 그림은 사실적
인 재현의 기능에서 사진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무리 디테일이 뛰어난 화가의 묘사도 사진 한 장이
갖는 사실감에 미칠 수 없었다. 회화(繪�)는 더 이상 카메라와 경쟁하며 세상을 똑같이 묘사하지 않
는 대신 화가의 눈으로 관찰하고 상상하며 해석하는 표현 예술의 영역으로 역사를 새롭게 이어갔다.


한편 사진은 회화가 물려준 사실성(reality)을 바탕으로 예술과 보도·광고·과학 등의 분야에서 세상
을 기록하고 소통하도록 발전시켜갔다. 사진이기에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되고 너무 분명하
기에 사진이 조작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갖게 했다.


이렇게 사진은 무엇을 멋지게 보여주기보다 제 모습으로 보여주기가 먼저였다. 카메라와 렌즈, 프린
트 기법 등은 더 사실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발전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찍
기보다 예쁘게 찍히는 카메라만 찾는다. 촬영과 보정이 동시에 되는 카메라까지 나온 지도 오래됐다.


예쁘게 보이는 것과 사실적인 것 사이에서 사진은 어느 쪽에 서야 하나? 단언컨대 사진은 사실에 대
한 기록이다. 사진은 세상을 예쁘게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촬영한 사진으로 하늘을 더 푸르
게 하거나 채도를 높여서 더 진한 색조를 띠게 하는 것은 여중생이 엄마 립스틱을 바르는 것과 같다.
살짝 하면 애교나 기술이지만 지나치면 촌스럽게 되는 것이 사진 보정이다. 사진은 눈속임의 기술이
아니다. 가능하면 있는 모습 그대로 찍고 보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