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윤희영 News English

[윤희영의 News English 산책] 나치 수용소에서 만난 소년·소녀, 뉴욕에서 소개팅 재회

류진창의 영어공부 0007

입력 2008.10.14 08:19

나치 치하 독일(Nazi-controlled Germany)의 유대인 집단수용소(ghetto).

그 수용소의 철조망 울타리(barbed-wire fence) 사이로 인연을 맺은 한 소년과 소녀가

훗날 우연히 다시 만나 결혼까지 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허만 로젠블라트라는 이름의 유대인 소년은 수용소 안에,

로마 라지키라는 유대인 소녀는 식구들이 기독교도로 가장한(pose as Christians) 덕분에 수용소 밖에 살고 있었다.

이들을 맺어준 중개자(go-between)는 사과였다.

 

소년과 소녀는 철조망 사이로 서로를 보게(their eyes met through the barbed-wire) 됐다.

인근 농장에서 일하는(work on a nearby farm) 소녀는 사과들을 들고 가던(carrying apples) 중

소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wonder what she can do for the boy) 하다가

사과 한 개를 울타리 너머로 던져(throw one over the fence)줬다.

그렇게 시작됐다(And so it began).

 

소년과 소녀는 다음날 같은 자리로 돌아왔고(return to the same place the following day),

소녀는 다시 사과 한 개를 던져(toss an apple again)줬다.

그리고 두 사람은 총총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both scurry away).

그 이후 매일 수 개월 동안(each day after that, for months) 이 같은 그들의 일과는 계속됐다.

 

그들은 서로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never know each other’s name).

경비병에 발각될까 두려워(so fearful they’d be spotted by a guard)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never utter a single word).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울타리로 다가와 다시 오지 못하게 될 것(won’t be able to be back)이라고 소녀에게 말했다.

소녀가 “너를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얘기냐(Are you saying I won’t see you anymore)”고 묻자

소년은 “이제 더 이상 근처에 오지 마(Don’t come around anymore)”라고 대답을 대신했다.

 

그들의 짧고 순수했던 만남(their brief and innocent tryst)은 그렇게 끝났다(come to an end).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Or so they thought).

소년은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질 예정이었다(be shipped off to a death camp).

 

앞서 소년의 아버지는 악성 발진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fall ill with an malignant typhus and pass away) 말았다.

소년이 겨우 12살 때였다.

 

소년은 어머니와 3명의 형제 등 가족과 함께 유대인 집단수용소로 이송됐다.

그의 다섯 가족은 6명의 삼촌 가족과 함께 방 한 칸을 나눠 써야(share a single room with his uncle’s 6 member family)했다.

그리고 소년은 형들과 함께 근로허가증(working papers)를 얻어 독일인들을 위한 사역 작업에 동원되곤 했다.

 

그런 어느 날, 소년이 있던 집단수용소가 해체(be dissolved)됐다.

소년과 같은 유태계 폴란드인들은 밖으로 내몰려(be ushered out) 두 줄로 서라는 강요를 받았다(be forced to form two lines).

한 줄에는 소년 형제들처럼 근로허가증이 있는 사람들, 다른 한 줄에는 소년의 어머니와 같은 나머지 사람들이 섰다.

그 것이 소년이 어머니를 본 마지막(the last time the boy would ever see his mother)이었다.

 

소년이 소녀의 눈에 띈 곳(where the boy catches her eye)은 다음에 옮겨간 집단수용소에서였다.

소녀가 그에게 음식을 가져다(bring him food)주는 것은 그녀 일과의 한 부분이 됐고(become part of her routine),

소년은 말이 퍼질 것을 우려해(for fear word would spread)

다른 사람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never mention a word of it to anyone else).

 

결국 소년은 지금은 체크공화국에 있는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됐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not long after) 소련군이 진주(roll in)하면서 수용소도 해방(be liberated)을 맞게 됐다.

 

소녀는 소년과 헤어진 뒤 이스라엘에 있는 간호학교(nursing school)로 떠났고,

소년은 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런던으로 가 전기기사가 되기 위한 공부(learn to be an electrician)를 했다.

그리고 옛날의 매일 매일 의식(the old daily ritual)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fade from their memories) 갔다.

 

그들이 우연히 다시 만난 곳은 뉴욕이었다.

어른이 된 소년 로젠블라트는 뉴욕에 정착, TV 수리점을 운영하고(run a television repair shop) 있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후,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phone him one Sunday afternoon)

한 여성과 만남을 주선(fix him up with a girl)해주겠다고 말했다.

 

로젠블라트는 안면 없는 남녀의 데이트(blind date)에 별 관심이 없다(unenthusiastic)며 거절했지만,

결국엔 마음이 약해지고(finally he relents) 말았다.

 

친구 소개로 만난 여성은 유태계 폴란드인이어서 편하게 느껴졌고,

대화는 자연스레 전쟁 중 경험 이야기로 옮겨(talk turns to their wartime experiences)갔다.

그런데 로젠블라트가 자신이 있었던 수용소들 이야기를 다시 되뇌이는(recite the litany of camps) 순간,

여자의 귀가 쫑긋하는(her ears perk up) 것 아닌가.

그 순간 그들의 입에선 거의 동시에 그들의 운명을 평생 바꿔놓을 말(words that would change their lives forever)이 튀어나왔다.

“그게 나였어요!(That was me!)”

 

로젠블라트는 다시는 그녀를 떠나지 않겠다(never leave her again)며

그날 밤 당장 청혼(propose marriage that very night)을 했고,

결국 두 달 뒤 그녀로부터 ‘예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마침내 1958년 두 사람은 뉴욕시 브롱스의 한 유대교회(synagogue)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믿어지지 않는 너무나 특이한(too remarkable to be believed) 이야기지만,

두 사람은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한다.

 

약혼 후까지도(even after their engagement) 두 사람은 이 이야기를

거의 자신들만 알고(keep the story mostly to themselves) 있었으나

마 침내 다른 사람들과도 나눌 필요성을 느끼게(feel the need to share it with others) 돼

외부에 알리게 됐다고 밝혔다.

 

두 소년 소녀의 이야기는 ‘천사 소녀’라는 제목의 어린이용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며,

‘울타리 꽃’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는 계획(plans to turn it into a film)도 추진되고 있다.


출처 :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0/14/20081014001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