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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영 News English

★[윤희영의 News English] 역대 올림픽의 국가 간 갈등

류진창의 영어공부 1066

입력 2018.01.23 03:10


근대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은 세계평화를 고취시키겠다는 꿈을 꿨다

(dream of inspiring world peace).

그러나 그 거창했던 올림픽 이상(grandiloquent Olympic ideals)은

첫 대회인 1896년 아테네올림픽 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리스·터키 간의 불화를 배경으로 열린(be held against a backdrop of Greco-Turkish strife)

이 대회에 터키는 참가하지 않았다.

프랑스·독일 대립 속에 열린 1900년 파리올림픽에 참석한 독일 선수단은

 "돼지 같은 놈들-프로이센을 타도하자(Pigs-Down with Prussia)"는 구호에 휩싸였다.

1908 런던올림픽 때 미국과 영국은 심한 갈등 관계에 있었다(be at each other's throats).

개회식 중에 미국 선수단은 영국 왕 앞을 지나면서 성조기 낮추기를 보란 듯이 거부했다

(ostentatiously reject lowering the Stars and Stripes).

흥분한 영국 관중은 야유를 퍼부었고(let out a chorus of catcalls),

대회 내내 양국 간 경기는 난장판이 됐다.

 

 

동·서독 분단 상황에서 열린 1972년 뮌헨올림픽은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과 맞아떨어지는(dovetail with his Ostpolitik) 듯했다.

냉전 해빙에도 도움이 될(help thaw the Cold War)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오산이었다.

고유의 유니폼과 국가 상징을 과시하며 주권국가(a sovereign state)로서의 독자성을 선전하는 데만 몰두해

(sink its teeth into propagating its singularity) 반감만 샀다(rouse their antipathy).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남북한이 개·폐회식에서 '통일 한국' 깃발을 앞세우고 공동 입장할

(march together in the opening and closing ceremonies behind a 'United Korea' flag)

평창올림픽에도 비관적 시각을 보였다.

북한은 1988 서울올림픽 때도 평화 애호 국가인 양 공동 주최를 제의했었다며 이런 견해를 제시했다.

"지속적인 화해(durable reconciliation)는 공허한 것이 될(turn out to be hollow) 것이다.

1936 베를린올림픽이 히틀러의 재무장을 단념토록 하지(dissuade Hitler from re-arming) 못했듯이,

평창올림픽도 김정은이 핵무기 모두를 포기하게 하기는커녕 확대 중단을 설득하는

(convince him to stop adding to his nuclear arsenal, much less give it up altogether)

것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출처 :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22/20180122026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