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19.03.02 03:00
[김형석의 100세일기]
지난 수요일은 모처럼 공식 일정이 없는 날이었다. 오래간만에 강원도 양구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 전날에는 전국적으로 대설주의보가 내렸는데, 강원도 북쪽으로 접어드니 설경이 장관이었다. 아주 오래전 북한 고향에서 본 설경 같아서 노구임에도 피곤을 잊을 수 있었다. 양구에 갈 때마다 세 곳을 찾아보곤 한다. 처음 들르는 곳은 근현대사박물관이다. 그 2층에 가면 내가 모아 소장하고 있던 정든 도자기 200여 점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만들어진 시기가 고려시대부터 구한말까지 걸쳐 있기 때문에 비교적 다양한 토기와 자기들이다. 고가의 관상품은 아니나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던 유물이어서 인간미가 풍기는 것들이다. 전국에서 생산된 것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모두가 30년 정도는 나와 함께 지낸 물건이다. 조지훈 시인이 한국의 백자를 찬양해 준 시문(詩文)이 액자로 걸려 있다. 문인화의 대가였던 김용진의 그림 두 폭도 제자리를 차지했다. 아내가 쓰던 붓글씨 유품도 나를 반겨준다.
다음에 찾아가는 곳은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이다. 지난겨울에 새로 건축한 기념관이다. 박물관 앞 호수 맞은편 용머리공원에 있다. 5년 전 공원 조성과 더불어 지어진 문화회관 뒷자리다. 아래층에는 안 교수의 유품과 서예 작품, 저서가 넓은 공간을 차지했다. 나와 안 선생은 같은 해에 서로 가까운 고향에서 태어났다. 중·고등학교를 같이 평양에서 보냈다. 후에는 일본에서 철학 공부를 했다. 윤동주 시인은 나와는 중학교(숭실학교) 동창이면서 안 선생과는 대학 때 친분을 나누기도 했다. 귀국한 뒤에는 철학 교수로 50년 동안 함께 일해온 친구다.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은 그 뜻을 잘 아는 양구 유지들이 우리를 위해 장만해 준 기념관이다. 우리의 업적과 생애를 소개해 주는 장소인 셈이다. 철학계의 후배들과 여행객들이 찾아 주곤 한다. 옥상 베란다에 올라서면 파로호(破虜湖)가 멀리까지 시야를 넓혀 주며 아름다운 숲을 지닌 산들이 평화로운 풍치를 만끽하게 한다.
양구는 내 조국 한반도의 정중앙에 해당한다. 그 위치를 기념하는 천문대가 있고 향토풍을 잘 전해 주는 박수근 화가의 생가 자리에는 석조로 된 기념 미술관이 있다. 수녀 이해인 시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시와 그림과 철학이 숨 쉬는 문화의 고장이다. 나는 양구에서 돌아서게 될 때 세 번째 장소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용머리공원 좌측에 있는 안병욱 선생 묘
소이다. 오늘은 흰 눈이 소복이 묘비까지 감싸주고 있다. 안 선생은 5년 전 여기에 잠들었고 지난해에는 아내도 자리를 같이했다. 그 옆은 내가 갈 자리로 되어 있다. 그리운 고향에 갈 수는 없지만 마음 둘 고향이 있어 감사한 일이다. 안 선생과 나는 정든 북녘 고향을 떠나 70년 동안 여러 곳을 헤매다가 영혼의 고향을 찾아 이곳 양구에 안식하게 된 것이다.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1/2019030101492.html
'일러스트=이철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현준의 도시이야기] '일상이 숨 쉬는' 광화문 광장 만들려면… 상점과 벤치, 나무 그늘 (0) | 2019.03.07 |
---|---|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부장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0) | 2019.03.05 |
[東語西話] 안동의 종가에서 우리 집안 옛어른을 만나다 (0) | 2019.02.28 |
[김철중의 생로병사] 도쿄서 지내보니… 고령 사회는 개성대로 살아볼 기회 (0) | 2019.02.26 |
[아무튼, 주말] 17세 때 안창호 선생의 마지막 강연 들어… 웅변이기보다 기도였다 (0) | 2019.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