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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김철중의 생로병사] 죽기 전에 먹는 인생 최후의 식사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입력 2018.12.20 03:11


말기암 환자에게 메뉴 신청받아 '만찬' 차려주는 병원 등장해
자기·유리 그릇에 담고 술 원하면 와인·정종도 제공

일본 여성 아야코씨는 젊은 나이에 자궁경부암에 걸렸다. 서른을 갓 넘길 때였다. 발병은 일렀지만, 발견은 늦었다. 암은 수술로 떼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자궁 주변으로 퍼졌다. 방사선 치료를 했지만 듣질 않았고, 항암제를 썼지만 먹히질 않았다. 이제 세상과 이별할 처지가 됐다. 유치원 딸과 초등학교 아들, 남편을 남기고. 그녀에게 마지막 소망이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바람이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할 정도로 몸을 가누기 힘든 형편이기에 조리가 불가능했다. 이에 병원 식당 셰프와 가족이 나섰다. 아들은 농장 소풍에서 캐온 고구마를 가져왔다. 낚시를 좋아했던 남편은 생선을 잡아 왔다. 셰프는 환자에게 평소의 '주부 레시피'를 물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고구마 맛탕이, 상큼한 레몬이 얹힌 아빠 생선 구이가, 엄마표 짭조름한 생선 조림이 병실 식탁에 차려졌다. 음식을 삼키는 데 힘들어하는 환자이기에 생선 조림은 최대한 물렁물렁하게 제작됐다. 아야코씨는 식구들과 함께 이 식사를 했다. 인생 최후의 식사였고, 라이프 엔딩 푸드(life ending food)였다. 그러고는 열흘 후 세상을 떠났다.

당신은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가. 머리에 떠오르는 그 '삶의 음식'을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마지막 시간 속에서 취할 수 있을까. 이걸 실행해 주는 병원이 있다.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이즈카 병원, 말기 암 환자들이 입원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다. 환자들은 이곳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머물다 숨을 거둔다. 이곳 내과의사 가시와기 선생과 시모다이라 병원 셰프는 2013년부터 말기 암 환자들에게 최후의 식사를 제공해 오고 있다.



'풍성한 만찬'이라고 이름 정해진 이 식사는 매주 금요일 저녁에 제공된다. 화요일에 환자들로부터 식사 메뉴 신청을 받는다. 다음 날 셰프와 주치의·간호사·영양사가 병실을 찾아가 환자가 원하는 식단과 조리 방식을 듣는다. 환자의 몸 상태와 씹는 힘에 따라 식사량, 딱딱한 정도, 입에 한 번에 넣을 음식 굵기와 크기를 정한다. 미각이 떨어진 상태이기에 예전 맛을 느끼도록 가능한 한 양념을 세게 한다. 씹는 힘이 없어 죽이나 젤리 같은 것만 삼킬 수 있는 환자에게도 음식 원형의 모습을 살려 내놓는다. 예를 들어 프라이드 치킨을 먹고 싶은 환자에게 닭고기를 갈아서 닭다리 모양을 만들어 내놓는 식이다. 식기도 병원 식판이 아니라, 자기(瓷器)와 유리 그릇을 쓴다. 음식 온도에 민감한 환자를 위해 조리사가 병실로 철판 조리판을 직접 가지고 갈 때도 있다. 그렇게 해서 딱딱한 음식을 전혀 못 먹던 68세 남자 식도암 환자가 배를 갈아 만든 셔벗을 시원하게 먹고 며칠 후 생을 마감했다. 79세 남성 신장암 환자는 우동에 스테이크까지 두둑이 먹고 영면을 취했다. 40세 여성 방광암 환자는 인도 카레 3종 세트를 맛보고 작별을 고했다.

지난 5년 동안 환자들이 최후의 식사로 찾은 음식은 다양했다. 역시 일본인이라 스시가 인기를 끌었다. 의외로 스테이크가 두 번째 순위였다. 장어덮밥, 덴푸라, 생선 사시미, 닭튀김, 교자 만두, 전골, 스키야키, 햄버거, 라면, 소바, 파스타, 짬뽕, 계란찜 등 각자 살아온 다양한 삶만큼이나 다채로운 음식이 나왔다. 술을 원하면 정종이나 맥주, 와인 한 잔이 곁들여졌다. 어떤 이는 2주 연속 최후의 식사를 맞이하는 행운을 얻었고, 다른 이는 '풍성한 만찬'을 기다리다 못내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셰프와 4명의 조리사들이 정규 일과 시간 외에 재능 기부를 통해 만찬을 준비했기에 '엔딩 푸드 데이'가 매주 금요일 한 번뿐인 것이 아쉬울 뿐이다. 대개 최후의 식사 후 일주일 뒤 이승을 떠났다. 저승을 향하는 환자의 영혼을 달래준 만찬이었다.

식사는 생명이고, 씹는 것은 행복이다. 인생 후반 끝에 놓인 많은 환자들이 한결같이 말한다. 맛있는 식사를, 따뜻한 밥을 왜 좀 더 많이 하지 않았을까. 가족들과 좋은 인연들과 왜 좀 더 자주 식사를 하지 못했을까 후회한다. 말기 환자들의 식사를 지켜본 셰프가 말한다. 한 끼를 먹더라도 맛있게 씹고, 다양한 것을 맛보며 살아야겠다고. 당신은 죽기 전에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가. 그걸 지금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드시라. 인생 최후의 식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19/20181219032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