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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아무튼, 주말] 최루탄 냄새 자욱했던 33년전 정년 고별 강연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18.12.15 03:01 | 수정 2018.12.17 10:48


[김형석의 100세 일기]


12월 첫 화요일이었다. 약속한 대로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대학으로 갔다. 총장을 비롯한 몇몇 교수와 인사를 나누고 강연장인 강당으로 갔다. 학교 측 얘기로는 400여 명이 모였다고 했다. 대학과 관련 있는 분이 많았다. 나를 소개해 준 총장의 얘기는 뜻밖이었다. 자기는 스물 몇 살부터 내 방송을 들으면서 자랐고 내 책을 통해 정신적 양식을 얻었다고 말했다.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했다. 부친은 나보다 두 살 아래였는데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더 그랬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마운 분이지만 오늘 비로소 처음으로 뵈었기 때문에 큰절로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총장은 강단 위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친히 청중 앞으로 이끌어 낸 후에 마루에 엎드려 큰절했다.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으나 그의 진심 어린 큰절을 받아들였다. 부친과 은사에게 드리고 싶은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청중은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박수로 응답해 주었다. 총장은 키가 대단히 큰 편이었고 나는 몸집이 작기 때문에 어른이 손아랫사람에게 절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70분 동안 만족스러운 강연을 끝냈다. 몇 차례 박수를 받기도 했다. 꽃다발을 받았고 개인적인 감사의 인사도 나누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해 보았다. 비교적 많은 강연을 해왔으나 오늘 강연회도 인상 깊은,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대학교수 생활 30여년을 끝내면서 가졌던 종강 강연회 때가 생각났다. 33년 전이다. 65세에 정년으로 교단생활을 떠나는 해였다. 그날은 연세대학교가 최악의 시련을 겪고 있었다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는 데모가 벌어졌고,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이 대학 캠퍼스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수업은 불가능했다. 발포는 없었으나 최루탄으로 학생들이 고통받고 있었다. 후배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은 내 고별강연을 연기하자고 청해왔다. 나는 개인사정도 있어 연기는 곧 취소가 되니까 10여 명이라도 좋으니 감행하자고 했다. 오래된 약속을 어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가장 넓은 강의실이 가득 찼고 설 자리도 없었을 정도였다. 강의실 안은 최루탄 가스로 모두가 눈물을 참아야 했다. 강의와 질문 시간까지 끝내고 나니까 90분 정도가 지났다. 두세 군데 신문사 기자들도 동참해 주었다. 끝나면서 학생들의 상당수는 다시 데모대로 복귀했 . 주관했던 후배 교수들과 감격스러운 인사를 나누고 최루탄 냄새가 자욱한 캠퍼스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기다리고 있던 병중의 아내가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말을 못하는 아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훌륭하게 잘되었다고 설명했다. 아내는 그럴 것이라는 표정이었다.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14/20181214016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