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호 정형외과 전문의
입력 2018.07.21 03:00
[유재호의 뼛속까지 정형외과]
열세 살 여자 아이가 응급실로 내원했다. 어깨가 빠졌는데 동네 병원에서 도저히 맞추지 못해서 옮겨 왔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 여럿이 달라붙어 이리저리 당기고 돌려 보아도 도저히 맞추어지지가 않았다. 애가 아프고 힘들어 하는 것도 그렇지만 더 억지로 하다가는 엉뚱하게 뼈가 부러지거나, 신경이 마비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중단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이가 좀 모자라 보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깨 관절 안의 인대가 고약하게 찢어져서 어긋난 관절 사이에 끼어 있으면 관절을 맞출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수술실에서 마취하고 다시 맞추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수술을 해서라도 어긋난 관절을 맞추기로 했다. 결국 수술까지 했는데, 관절 속을 직접 들여다보니, 무엇인지 모르는 조직들이 관절 주위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이것 때문에 관절이 맞추어지지 않았다. 이 정체불명의 조직들을 상당량 제거한 후에야 겨우 어긋난 어깨 관절을 맞출 수 있었다. 제거된 조직은 거의 어른 주먹 크기 정도 나왔다. 그런데, 이 조직은 무엇인가? 조직 검사 결과는 놀랍게도 골육종이라는 암이었다. 즉, 팔뼈에 생긴 암 덩어리가 커지고 커지다가 결국 어깨 관절이 빠지는 정도가 된 것이다. 골육종은 뼈가 활발히 성장하는 10대에 잘 생기고, 생기는 부위도 어깨 주변이나 무릎 주변인 것은 잘 알려졌다. 이 아이는 어쩌다가 그 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에 오게 되었을까? 그 아이는 정신 지체가 있었고, 보호 시설에 수용되어 생활하고 있었다. 자기의 불편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세심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어깨 관절이 빠진 것은 수술로 맞추었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팔에 생긴 암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이후에 환아는 항암 치료가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수개월 후 그 아이가 결국 사망하였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깨 관절, 팔뼈에 생긴 골육종 암의 첫째 증상이 어깨 관절 탈구로 나타난 특수한 경우이다. 아이가 정신지체가 없거나, 보통 가정집에서 자란 아이였다면, 좀 더 일찍 병을 발견하여 치료받고, 생명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아이의 어깨 관절이 빠졌을 때 그 원인을 처음부터 암으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매우 희귀한 병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 그렇지만, 보통과 다르게 좀 이상한 점이 있을 때, 그때는 '어, 이거 좀
이상한데?'라고 생각해야 한다. 더욱이 10 대 전후에는 뼈가 활발히 자라는 시기이므로 뼈에 암이 생기는 일이 어른보다 많다. 어깨 주변의 암으로 어깨 관절이 빠져서 병원에 오는 일은 아이들에서도 생각하기 어렵지만, 어른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어린이는 어른과 다르다. 어린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생기는 병도 다르고, 고려해야 할 내용도 어른과는 다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0/20180720016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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