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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Why] 8층 옥상 '보통'인데도 1층은 '나쁨'… 지하철역 미세먼지 '최악'

이정구 기자

입력 2018.03.31 03:01


[Why 실험실] 광화문 미세먼지 직접 측정해보니

못믿을 미세먼지 측정소
전국 264개 측정소 중 85%가 10m 이상 높이에


수도권에 미세 먼지 비상 저감 조치가 발령된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미세 먼지 피난을 떠났다.

도시 전체가 미세 먼지에 갇힌 날 숨 쉴 구멍을 찾아봤다./연합뉴스·일러스트=이철원

2018년 3월 26일 월요일. 한 주일을 시작하는 이날 수도권에는 미세 먼지 비상 저감 조치가 발령됐다. 출근 지하철 창밖으로 보이는 양화대교가 온통 잿빛이다.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역 근처도 마찬가지.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이 미세 먼지에 갇혔다. "미세 먼지 악화에 대해 중국 정부에 항의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에 20만명 넘게 서명했고, 미세 먼지 이름을 '미세 발암 물질'로 바꿔달라는 청원도 진행 중이다. 미세 먼지를 피해 사무실에 들어왔지만 이곳도 공기가 텁텁하다. 휴대용 미세 먼지 측정기를 확인하니 'PM10 기준 80㎍/㎥(1㎍은 100만분의 1g)'. 먼지 입자 지름이 10㎛ 이하인 미세 먼지 PM10은 환경부 기준에 따르면 81 이상부터 '나쁨'이다. 아슬아슬하게 '보통'에 턱걸이한 셈. 그렇다면 광화문 인근에서 최악인 장소와 최선의 피난처는 어디인가. 다음은 며칠간 직접 체험하며 동일 시간대를 중심으로 측정한 결과다.

광화문 일대 돌아보니 지하철 역이 최악

처음 찾은 곳은 교보문고 사거리 인근 '포시즌스호텔 서울' 로비. 거리에서 '나쁨' 빨간불을 보이던 미세 먼지 측정기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녹색불로 변했다. 미세 먼지 수치는 64㎍/㎥(보통)로 가장 가까운 서소문 별관 미세 먼지 측정소의 95㎍/㎥(나쁨)에 비하면 3분의 2 수준이었다. 공기는 좋았지만 오래 앉아 있기에는 눈치가 보여 익숙한 광화문 지하철 역으로 이동했는데 결과적으로 실수였다. 이날 돌아본 광화문 일대 6곳 중 가장 좋은 곳에서 가장 나쁜 곳으로 가는 직행 통로였다. 광화문역은 '나쁨'이었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미세 먼지 수치가 빠르게 올랐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109를 찍더니 승강장에서는 132까지 올랐다. 실외 기준을 따르면 모두 '나쁨' 수준이지만 지하상가·지하역사·철도대합실 등 시설은 150㎍/㎥ 이하 기준을 따르기 때문에 '통과'되는 수치다. 실외 '보통' 기준(31~80㎍/㎥)보다 오히려 느슨하다. 지하철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던 취업 준비생 김모(28)씨는 "실내라고 공기가 좋은 것 같지는 않아서 외출하면 마스크를 계속 쓰고 벗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쁨'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지하철 역과 이어진 서점 '교보문고'로 들어갔다. 같은 지하라도 공기는 상대적으로 나았다. 측정 결과는 71(보통). 교보문고는 "광화문점은 도로와 지하철 역이 가까워 방문객 옷·신발에 붙은 초미세 먼지 유입이 많은 편"이라면서 "매장 안 측정기로 공기 질을 모니터링하면서 '나쁨'으로 변하면 물걸레 청소를 하는 등 매뉴얼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에선 장애인 단체 집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참가자 절반 정도가 미세 먼지용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먼지 없는 종로, 맑은 종로. 지금은 도로 청소 중입니다'라고 써 붙인 물청소 차가 세종대로 아스팔트 위로 물을 뿌리며 지나갔지만 눈은 여전히 따가웠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세종대왕 동상 앞(99)과 경복궁 광화문 앞(99)도 '나쁨'이었다. 참고로 이날 돌아본 곳의 초미세 먼지(PM2.5)는 49(호텔 로비)~84(광화문역) 수준. 26일 기준으로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쁨(51~100㎍/㎥)'이었는데, 27일부터 강화된 기준으로는 광화문역은 '매우 나쁨'으로 더 나빠지고, 나머지는 모두 '나쁨'이다.

1층은 8층 옥상보다 27% 더 심각

높은 곳은 낫지 않을까 싶어 광화문 앞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찾았다. 1층 출입구 앞 미세 먼지 수치는 97(나쁨). 28m 높이 8층 황토마루 옥상 정원은 76(보통)이었다. 1층이 옥상보다 약 27더 나빴다. 측정기로 확인하지 않아도 옥상 정원은 1층보다 바람이 더 많이 불어 쾌적하게 느껴졌다. 29일 목요일 오후 1시쯤에도 옥상은 78, 1층은 93으로 약 19% 차이를 보였다.

일상생활을 하는 높이 1.5m보다 훨씬 높은 곳에 설치된 '고공 미세 먼지 측정소'의 문제점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이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264 측정소 중 10m 이상 높이에 설치된 측정소가 85(224개)에 달한다. 환경부가 권고하는 측정소 높이는 1.5~10m 미만이지만 이 기준을 따르지 않아도 딱히 제재 조항은 없다. 고공 미세 먼지 측정소와 비슷한 높이인 박물관 옥상과 지상을 비교해보니 고공 측정소의 '보통' 수치를 믿고 실제 숨 쉬는 공간 '나쁨'을 안전하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측정소 수치를 믿지 못해 휴대용 측정기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김모(40)씨는 "키즈카페나 카페를 갈 때도 휴대용 측정기로 확인한다"며 "엄마들끼리 이렇게 확인한 공기 좋은 장소를 공유한다"고 말했다.

이민도 고려, 피난처로 공항 찾는 공기난민

회원 수 7만여명의 온라인 카페 '미세 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미대촉)'에는 해외 이민이나 국내에서 공기가 좋은 강원도나 제주도로 이사를 고민한다는 '공기난민' 글이 종종 올라온다. 서울 중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37)씨도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는 아이를 억지로 끌고 들어올 때마다 이민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고 말했다. 이민·이사가 어려우니 당연히 주변에서 피난처를 찾는다. 같은 지역에 사는 회원들끼리 근처 미술관, 키즈카페, 휴양림 등 공기 질이 좋은 장소 정보를 나눈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미세 먼지 오아시스'로 불리는 인천국제공항이 추천 1순위다. 미세 먼지와 안개 때문에 가시거리(저시정) 경보가 내려 항공편 회항·결항이 빚어졌던 지난 26일에도 공항 안은 미세 먼지 청정 구역이었다. 26일 제1여객터미널 미세 먼지(PM10) 평균 수치는 3층 탑승동(11), 2층 (13), 3층 (9) 모두 '좋음'이었다.

인천공항은 '실내공기질관리법' 150㎍/㎥ 이하 기준 적용 시설이지만, 공항공사는 법적 기준보다 강화된 자체 기준 80㎍/㎥로 관리하고 측정 결과를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공개한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항공사 정비사 김모(27)씨는 "공항 실외에서 일하다 가끔 공항 안으로 들어가면 같은 곳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공기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 김경종 기계시설처장은 "실내 공기 질 측정국에서 온도와 이산화탄소 농도에 따라 깨끗한 공기를 자동으로 공급하는 공조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고, 1만3000여개 필터를 연간 4만개씩 새로 교체하며 쾌적한 공기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심에서 멀리 벗어날 수 없는데 외출은 하고 싶다면 미세 먼지 '숲세권(+역세권)'으로 피난해도 된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지난해 4월 서울 동대문구 홍릉숲과 숲에서 2㎞ 떨어진 도심의 미세 먼지를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숲은 도심보다 미세 먼지와 초미세 먼지 각각 25.6, 40.9낮다. 국립산림과학원은 "나뭇잎이 미세 먼지를 흡착·흡수하고 나뭇가지와 줄기가 가라앉는 미세 먼지를 차단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인 가구 공기청정기 4대 필요하다는데

광화문 일대에서 미세 먼지 '보통'인 곳을 발견했지만 맑은 공기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공기 청정 카페를 마지막 피난처로 정했다. 28일 오전 11시쯤 카페 앞 건널목 미세 먼지 수치는 70(보통). 카페 1층에서 음료를 주문하는 사이 '20(좋음)'으로 뚝 떨어졌고, 더 넓은 2층에서는 '7'까지 떨어졌다. 처음 보는 한 자리 숫자였다. 카페를 한 바퀴 돌아보니 이해가 됐다. 공기청정기 제조 업체에서 운영하는 이 카페 1~2층 330㎡(약 100평)에 대형 공기청정기 2개, 소형 공기청정기 16개가 돌아가고 있었다. 책장, 창가, 테이블 아래 곳곳에서 작은 소음과 함께 미세 먼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평범한 가정집에서 이렇게 해두고 사는 건 불가능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이우 클레어 대표는 "면적당 개수로 따지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며 "거실에 대형 1개, 방마다 소형 1개씩은 둬야 미세 먼지를 막고 맑은 공기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옥주 의원, 이우헌 클레이 대표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30/20180330015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