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연 기자
입력 : 2017.12.09 03:01
옛날 분위기 연출하기 위해 카페·레스토랑서 주문 많아
날짜 밑에 고전 명구 넣어 개인이 구입하는 경우도
"아침마다 한장씩 넘기며 마음을 다잡는 효과 있어"
올해 초 서울에 식당을 개업한 40대 박모씨는 온라인 중고 장터에서 2016년 일력(日曆)을 구했다. 그는 "식당을 옛날 느낌으로 꾸미려고 알아보던 차에 일력이 있으면 분위기가 살 것 같았다"며 "따로 주문하면 100부 이상 찍어야 해서 날짜가 절반 정도 남은 작년 일력을 사게 됐다"고 했다.
매일 뜯어 쓰는 일력이 인테리어용으로 부활하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판촉물 업체 관계자는 "원래는 일력이 달력보다 단가가 열 배 높아 주문이 상대적으로 적고 예전부터 거래해 온 업체들만 매년 주문하는 편이었다"며 "최근 몇 년은 개업한 카페나 레스토랑의 젊은 사장들이 주문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업체는 이달 초 이미 일력 주문을 마감했다. 제작 기간도 보름 정도로 달력보다 길기 때문에 달력 제작 업체 대부분이 11월 중순이면 주문을 마감한다고 한다. 또 다른 달력 제작 업체는 "사람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쓰니 달력 주문은 줄고 있지만 일력은 수요가 몇년째 꾸준하다"고 했다. 인테리어나 홍보용 말고 개인이 쓰려고 일력을 사는 이들도 늘었다. 주로 젊은 층이다. 출판사 민음사는 최근 2018년 일력을 2000부 만들었는데 일주일 만에 소진했다. 이 상품을 기획한 마케팅부 조아란 과장은 "날짜 밑에 고전 명구를 한 줄씩 넣어 매일 아침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며 "이렇게 수요가 많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데 내년에는 더 넉넉하게 찍을 예정"이라고 했다. 스마트폰 캘린더에 익숙한 젊은 사람들이 왜 일력에 열광할까. 직장인 최모(30)씨는 얼마 전 한의원에 갔다가 판촉물로 일력을 받았다. 그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일력을 받쳐놓고 생선 뼈를 발라주시던 생각이 나 뭉클했다"며 "연말에 달력을 받으면 대부분 버리는데 일력을 보니 반갑고 신기해 집에 걸어놨다"고 했다. 이번에 수능을 치른 한 학생은 "한 번 지나간 날은 뜯어내며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며 "매일 날짜를 넘기며 마음을 다잡는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개인이 습자지로 만든 옛날 형태 일력을 구하기 어렵다 보니 디자인 업체에서 만든 일력을 사거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동 구매하기도 한다. 프랑스 파리에 머무는 블로거 김모씨는 3년째 직접 찍은 파리 풍경 사진을 엮어 만든 일력을 만들어 팔고 있다. 그는 "넘기기 쉽게 스프링 형태로 엮을까도 고민했지만 일력은 역시 뜯는 맛이 중요하기 때문에 제본을 했다"고 했다. 출판사 '예담'에서 만든 고양이 일력도 인기다. 매일 다른 고양이 사진과 함께 짧은 에세이가 곁들여 있다. 부제는 '1일 1 고양이를 선물합니다'. 취향이 담긴 일력들은 지나간 날짜를 뜯은 뒤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이들이 많다. 몇년간 여행한 사진 365장을 추려 자신만의 일력을 만든 한 20대 여성은 "매일 다른 장소에서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며 "하루하루에 애정이 간다"고 했다.
조아란 과장, 민음사 일력, 파리 일력, 고양이 일력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8/20171208017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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