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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Why] 막내딸 친구 납치범 된 그와 아내, 처남… 강남 이웃간에 무슨일이

송혜진 기자

입력 : 2017.12.09 03:01 | 수정 : 2017.12.09 11:13


납치범 A씨와 피해아동 아버지 B씨 얽힌 '인도네시아 납치 사건'
동네 주민 50여명은 "억울한 사람 납치범 몰지 말라" 탄원서도



'주식이 뭐길래… 딸 친구 해외 납치까지.' 지난달 초 일부 매체에 이런 제목 기사가 보도됐다. 서울 강남 고급 아파트에 사는 40대 남자가 친하게 지내던 이웃 남자 소개로 주식 투자를 했다가 몽땅 날리자 돈을 돌려달라며 그 이웃의 초등학생 아들을 외국으로 납치했다가 붙잡혔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지난달 1일 골프장을 운영하는 A모씨와 A씨 처남을 이 같은 혐의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체포하고, 다음 날 한국에 있던 A씨 아내도 공범으로 검거했다. 이들 세 명 모두 현재 13세 미만 약취·유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상태다. A씨 이웃 B모씨의 아들을 인도네시아에 데려갔다가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도록 억류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사건을 설명하면서 "인도네시아 경찰과 손잡고 발 빠르게 움직인 결과, 더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A씨와 같은 아파트에 살거나 A씨 아이와 같은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이웃 50여명은 "사건의 이면을 봐달라"며 "억울한 사람을 납치범으로 몰지 말아 달라"고 검찰에 탄원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내용이 경찰 발표대로라면 동네 주민들이 이웃의 아이를 납치한 사람의 가족을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가족끼리 친했던 두 집안의 불화

구속된 '주범' A씨는 전직 프로골프 선수다. 아내와 사이에 2녀 1남을 두었다. 인도네시아로 납치된 아이는 A씨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B모씨의 초등학생 외아들로, A씨 막내딸과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인 친구 사이였다. B씨는 아파트 주민 사이에서 미국에서 일하다 온 펀드매니저로 알려졌었고, 그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투자자를 모아 기업 인수·합병을 해 큰돈을 번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A씨네와 B씨네는 아이들을 함께 놀게 하면서 가깝게 지낸 사이로, B씨네가 A씨네한테 "우리 아이를 함께 놀게 해줘 고맙다"며 비싼 선물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 주민들의 말이다.

경찰에 따르면 올해 초 A씨는 B씨를 만나 "골프장 사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며 "자금 운용 때문에 걱정이 많다"는 얘기를 털어놓게 됐다. B씨는 그런 A씨에게 "내가 운영하는 코스닥 상장법인에 투자하면 수익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솔깃해진 A씨는 자신의 돈 약 16억원과 주식계좌, 공인인증서를 B씨에게 넘기며 투자를 부탁했다. B씨는 "이 돈으로 주식을 사겠다. 현금이 필요하면 내가 주식을 되팔아서 돌려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고 A씨는 진술했다. 이 둘의 관계가 어그러진 건 지난 10월쯤이다. B씨가 주가 조작과 유사수신, 사기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A씨는 그제야 B씨가 '뉴욕 펀드매니저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과 이미 세 차례나 비슷한 혐의로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급해진 A씨는 구치소로 B씨를 찾아가 "투자금 16억원 중 일부라도 돌려받게 해달라"고 했지만 B씨는 "법대로 하라"고만 대답했다고 한다. A씨는 경찰에서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분한 마음을 품었던 건 맞는다"며 "B씨 아이를 내가 데리고 있으면 돈을 얼마라도 돌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A씨는 그러나 "아이를 억지로 납치했거나 해를 가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생일 여행인가, 납치인가

A씨가 인도네시아에서 체포됐을 때 그는 자신의 둘째 아들, B씨 아들과 함께 자카르타 한 리조트에 머물고 있었다. A씨 처남은 A씨의 두 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려다 자카르타 공항에서 붙잡혔다. 이들은 모두 "아이들 생일 여행에 B씨 아들이 부모 허락을 받고 따라온 것"이라고 말했다. A씨 아내는 경찰에서 "둘째 아들 생일 선물로 세 남매의 인도네시아 여행을 계획하고 비행편과 숙소 예약도 내가 직접 했다"고 말했다. B씨 아들이 이 여행에 함께 간 것 역시 B씨 아내가 "우리 아이도 함께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A씨 아이들 부모 대신 외삼촌이 여행을 따라간 것은 평소 아이들과 잘 놀아주며 친한 사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외삼촌과 아이들은 10월 24일 인도네시아로 출국했고 11월 1일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B씨 아내가 A씨네를 의심하게 된 것은 아이가 예정 일보다 사흘 늦은 11월 4일 귀국하게 됐다는 말을 들으면서부터다. A씨는 아이들의 귀국 일을 하루 앞둔 10월 31일 인도네시아로 날아가 아이들과 합류했다. 그러고는 아내에게 자신의 둘째 아들과 B씨 아들의 귀국 비행기 편을 11월 4일로 늦추라고 말했다. A씨 아내는 남편 말대로 두 아이의 비행기 예약을 바꾼 뒤 B 씨 아내에게 "애들 더 놀고 싶대. 애들 아빠에게 연락해. 내 손을 떠났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휴대전화 전원을 꺼버렸다. A씨와 남편 사이의 금전 관계를 알고 있었으나 A씨 아내와는 꾸준히 연락하고 지냈던 B씨 아내는 화들짝 놀랐다. A씨가 무슨 사고를 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인도네시아 경찰에 바로 연락해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A씨와 A씨 처남을 체포했다. 경찰은 "이들이 벌인 일은 미성년자 약취죄나 유인죄에 정확히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A씨네 이웃들이 탄원서를 제출하는 이유는 두 가족 사이가 그만큼 나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두 집안이 아이들을 매개로 친해지기 시작해 거액 투자를 부탁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고, A씨네 아이들 생일 여행은 A씨 아내와 외삼촌이 지난 8월 이미 계획한 사실을 이웃들도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B씨 아내가 자신의 아이를 여행에 끼워달라고 한 것 역시 알려진 이야기라고 주민들은 말했다. 또 두 집안이 금전 관계로 나빠진 이후에도 아내들끼리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으며 A씨 아내가 B씨 아내에게 "우리 집 사정을 봐서 돈을 얼마라도 좀 돌려달라"고 부탁하고 B씨 아내가 실제로 1억 5000만원을 이체한 사실도 있다는 것이다. 이 돈을 두고 경찰은 "A씨가 협박해서 받아낸 돈"이라고 했으나 A씨 측 김가헌 변호사는 "A씨가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 받은 돈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또 "B씨 아이는 인도네시아에서 A씨 아이들과 줄곧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귀국 일정을 연기한 것도 10월 31일 도착한 A씨가 B씨 아들에게 '더 놀고 싶냐'고 묻고 '그렇다'는 답을 듣고 바꾼 것이다. 약취나 유인, 어느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경찰도 "현지에서 A씨나 그 처남이 B씨 아이를 위해한 일은 없었고, 여행 일정도 차질 없이 진행된 것으로 안다. B씨 아이도 자신이 유괴됐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A씨가 '그 집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 B씨에게 준 돈을 받는 데 유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경찰이 A씨와 아내, 처남까지 모두 구속한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주장했다.

'이영학 사건' 여파로 과잉 수사?

일부에선 "경찰이 이영학 사건 때 '초기에 제대로 수사하지 못해 사건을 키웠다'는 비난을 받고 나서 비슷한 미성년자 납치 신고를 받자마자 과잉 대응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미성년자 유괴나 납치가 한동안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만큼, 경찰 입장에선 늑장 대응 했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애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집' 원영섭 변호사는 "형사 사건을 많이 겪어봤지만 경찰이 이렇게 세 남매의 아빠와 엄 마, 외삼촌까지 한꺼번에 구속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했다. A씨의 세 아이는 현재 할머니 집에 머무르고 있다. 아이들은 인도네시아 리조트와 공항에서 아빠와 외삼촌이 체포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유괴 사건에 빠르게 대응했을 뿐 문제 될 만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측은 "증거를 보고 기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가헌 변호사, 원영섭 변호사, 이영학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8/20171208019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