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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Why] 건강검진 결과 내라, 한달씩 등록해라… 어르신 쫓아내는 수영장

김수경 기자

입력 2017.10.28 03:01 | 수정 2017.10.30 13:34


"미끄러져 잇단 골절사고 보험료 오르는 등 부담"
80세 이상 회원들에게 그만 나오도록 종용



지난 6월 만 80세가 된 김삼룡씨는 2011년부터 줄곧 다니던 서울 송파구 한 스포츠센터로부터 "건강검진 결과를 가지고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곳 수영장에 계속 다니려면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라는 이야기였다. 김씨는 "40년 넘게 아침마다 수영을 해와 강사도 내 실력이 웬만한 젊은 사람 못지않다고 했었다"며 "5월까지만 해도 멀쩡히 다니던 데서 검진 결과를 가지고 오라니 수영장 그만 나오라는 뜻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씨는 80대도 조건 없이 받아준다는 서초구 한 스포츠센터로 옮겼다. 송파구 해당 스포츠센터 측은 "만 80세가 된 회원들에게 일괄적으로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며 "위급한 일이 생길까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했다.

어르신들이 수영장에서 쫓겨나고 있다. 여든 안팎 나이 회원들에게 수영장에 그만 나오도록 종용하는 곳이 생기는 것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김씨처럼 최근 2년 내 건강검진 결과를 제출하라는 게 대표적이다. 한 스포츠센터에서는 75세 넘은 회원을 대상으로 거동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보행 능력과 시력, 청력 등 간단한 테스트를 직접 진행한다. 등록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3년, 1년, 6개월 단위로 등록할 수 있던 것을 80세 이상 회원에게는 한 달 혹은 3개월같이 짧은 단위로만 접수를 하는 것이다. 한 스포츠센터 관계자는 "등록을 아예 거부하면 회원들 사이에 소문이 안 좋게 도니까 등록 기간을 줄여서 건강 상태를 자주 점검하려는 취지"라고 했다. 스포츠센터 측도 할 말은 있다. 우선은 안전 문제다. 만 80세 이상에게 3개월 단위로만 등록할 수 있게 제한하고 있다는 서울 강남구 한 스포츠센터는 "최근 연세 많은 회원들이 수영장에서 미끄러져 엉덩이뼈나 팔,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다"며 "1년 새 연달아 사고가 생기다 보니 스포츠센터도 보험료가 오르는 등 어려움이 생겨 부득이하게 등록 기간을 제한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영장과 함께 사우나 등 목욕시설을 갖추고 있는 한 스포츠센터는 "회원 연령대가 높아지면 수영장뿐 아니라 사우나, 샤워장에도 안전요원 수를 늘려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차라리 회원 서너 명 덜 받는 것이 사고 위험도 적어지고 비용도 덜 드니 회사가 그 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동네 한 스포츠센터 수영장에 다니다 75세가 된 지난해 수영장을 옮겼다는 박석리씨는 "미끄러지는 사고는 노인뿐만 아니라 회원 누구나에게 생길 수 있는 사고"라며 "안전 문제는 스포츠센터가 책임져줘야 하는 문제인데 오랜 회원들인 노인을 운동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몇몇 수영장은 위생 문제를 거론했다. 건강검진 결과를 확인한다는 서울 마포구 한 수영장 관계자는 "어르신들 중엔 생리현상 통제가 잘 안 돼 수영장 안에서 실수를 하는 회원들도 있다"며 "대부분 75세 이상 연로하신 회원들이 그런 실수를 하기 때문에 다른 회원들이 입을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검진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한 수영장 직원은 "오전 7시나 8시 직장인반에 어르신들이 나와서 느긋하게 운동하고 있으면 젊은 회원들이 수영하기가 꺼려진다고 하더라"며 "어떤 회원들은 같이 물에 들어가기 싫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존 수영장들의 홀대 때문에 풍선효과를 얻어 노인들 사이에 '핫플레이스'가 된 스포츠센터도 있다. 서울 양재동 S스포츠센터는 80세 이상 회원이 몰리면 서 수영장과 사우나, 샤워실과 탈의실에 안전요원을 상시 배치하고 곳곳에 비상벨도 설치했다. 이 스포츠센터 관계자는 "운동을 꾸준히 해온 요즘 80대는 운동을 전혀 안 한 60대보다 더 건강한 분들이 많은데도 다른 곳에서 기분 나쁜 일을 당하고 온 경우가 꽤 있다"며 "다른 곳과 달리 어르신들을 조금 더 배려함으로써 어르신들의 명소가 됐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7/20171027021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