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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조인원의 사진산책]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이라고 누가 그래?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부장대우

입력 2017.10.26 03:14


여자아이는 분홍, 남아는 파란색
어릴 때 분명히 나뉘던 색깔 선호, 자라면서 성별 구분 색깔 사라져
사회·문화·시대 따라 의미도 달라
'빨강'은 보통 진보를 상징하지만 미 민주당은 파랑, 공화당이 빨강

지난 2005년 딸 사진을 찍던 사진가 윤정미는 카메라 파인더 안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당시 네 살이던 아이는 어디선가 물려받은 분홍 원피스만 좋아했는데, 아이 뒤에 있던 장난감과 머리핀, 가방이 모두 핑크였다. 딸의 다른 물건을 모아 봤다. 연필, 동화책 표지, 치약에 장갑, 수저까지 몽땅 분홍색이었다. 우리 애만 이럴까 해서 근처 초등학교 앞을 가보니, 저학년 소녀들은 하나같이 분홍색 가방에 분홍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초등학생 아들은 정반대였다. 30㎝ 자를 사려고 문방구를 갔는데 분홍색만 남아서 안 사고 그냥 돌아왔다고 했다.

얼마 후 연수 가는 남편을 따라 가족 모두 미국 뉴욕으로 갔다. 외국 아이들도 성별에 따라 좋아하는 색이 다를까? 동네 마트에 가보니 그곳 매대도 남자 아동용은 파랑, 여자 아이용은 분홍으로 뚜렷이 나뉘었다. 사진가는 전단 광고로 50명 넘는 아이들을 구해서 각자 좋아하는 물건을 방안에 모아놓게 하고 촬영했다. 이번에도 피부색이나 빈부 차이와 관계없이 결과는 같았다.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 물결이었다.

세계가 주목한 윤정미의 '핑크, 블루' 시리즈는 이렇게 시작됐다. 윤씨의 사진들은 사진 잡지 라이프(Life) 2007년 4월 표지 사진과 올해 1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커버 스토리로 실렸다. 2012년 5월엔 세계 저명 인사들의 인터넷 동영상 강좌 테드(TED)에서 자신의 사진을 주제로 강의도 했다.

윤정미 작가, '핑크, 블루' 시리즈


촬영을 시작한 2005년부터 2009년, 2015년까지 세 번에 걸쳐 같은 모델들을 다시 찍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좋아하는 색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기록했다. 그런 윤정미의 '핑크, 블루' 사진들이 현재 인천 송도의 트라이볼에서 전시 중이다. 전시에는 아이 8명의 변화만 소개된다.

아이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초등학교에 들어간 윤씨의 딸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분홍색은 유치해" 하며 보라색이나 하늘색을 찾았다. 소녀들의 취향은 두 번째 버전에서 보라색이나 파란색으로 점차 바뀌었다. 반면 소년들은 청색 계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다른 색이 조금씩 추가됐다. 이번 전시에 처음 소개된 세 번째 사진들은 촬영을 시작한 지 10년이 흐른 시점의 변화를 담았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된 아이들은 특별히 좋아하는 색이 없었다. 여러 색이 섞이고 회색이나 검정 같은 무채색도 많았다.


윤정미의 사진은 남녀의 색을 구분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지에 대한 의문을 부른다. 좋아하는 색이 남녀를 구분하는 게 아니라 물건이 남녀를 나눠 놓았거나 인위적 관습이 남녀 구분을 미리 정하는 것일 수 있다. 소년과 소녀의 색 구분이 파랑과 분홍으로 나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조 파올레티(Paoletti) 교수는 1940년대 이후 분홍과 파랑의 성별 구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어떤 패션 상품이나 광고에도 특별한 색 구분이 없었다. 또 소녀들이 어릴 때부터 바비(Barbie) 인형을 갖고 놀면서 분홍색에 집착한다는 보고서도 있다. 진분홍 계열에 '바비 핑크'라는 명명이 있다.

색(色)엔 수많은 의미와 상징이 담겨 있다. 색의 의미는 사회나 문화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빨간색은 정치적으로 혁명이나 진보를 상징한다. 그런데 옛 한나라당은 총선을 앞둔 2012년 2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면서 30년 넘게 유지하던 파란색을 버리고 빨간색을 택했다. 지금도 자유한국당의 공식 컬러로 쓰이고 있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축구 응원 부대가 광화문 거리를 덮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 이후 빨간색은 열정을 나타내는 색으로 각인되기도 했다. 반대로 민주당의 공식 컬러는 청색이다. 새누리당에서 나온 바른정당은 하늘색을 선택하며 이전 청색 계열로 돌아갔다. 탈당과 합당, 분당을 거듭했던 정의당은 보라색의 통합진보당에서 나와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란색을 내걸었다. 채택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상징색과 같아 반대도 있었지만 바뀐 이후 지금껏 쓰고 있다. 지난달 27일 청와대로 4당 대표를 초청한 문재인 대통령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같은 초록색 넥타이를 맸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당시 국회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인준 투표를 협조해 준 데 대한 감사와 협치를 권유하는 의미로 해석했다.

노무현, 문재인, 안철수, 김명수


외국에선 전통적으로 보수 가 파랑, 진보가 빨강을 선호하지만 아닌 경우도 많다. 영국은 보수당이 파랑, 노동당이 빨강이지만 미국은 공화당이 빨강, 민주당이 파랑이다. 1976년 NBC방송이 대선 개표 방송을 하면서 당시 공화당 포드 후보 지지는 빨강, 민주당 카터 후보 쪽엔 파란색 램프로 지도에 표시하면서 양당 컬러 코드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5/20171025032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