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연 기자
입력 2017.10.28 03:01 | 수정 2017.10.28 07:56
유치원도 엄마들도 회사원도 핼러윈데이 스트레스 시달려…
마녀 의상·마술쇼 준비로 몸살
애들 외국 귀신파티 열어주면서 우리 광복절·한글날 의미는
과연 제대로 알려주고 있는지…
유아영어학원 3년 차 교사 김모(27)씨는 매년 이맘때쯤 되면 신경이 곤두선다. 핼러윈데이(10월 31일)는 김씨 직장 연중행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김씨는 다른 교사들과 함께 학원을 핼러윈 분위기로 꾸미고 학부모들에겐 행사 안내문을 보냈다. 행사 당일엔 교사들도 온종일 분장을 하고 수업을 한다. 김씨는 "10월만 되면 집에 재료를 잔뜩 싸들고 가서 호박등(燈) 같은 소품을 만든다"며 "학부모들에게선 의상을 어떻게 준비할지 묻는 전화부터 시작해, 종교적 이유로 핼러윈 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항의까지 받는다"고 했다. 그는 "서양 문화 흉내 내느라 교사와 학부모 모두 속을 썩는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강남 일부 유아영어학원에서 즐기던 핼러윈데이가 일반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퍼지면서 '핼러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도 늘고 있다. 핼러윈은 서양에서 10월 31일에 귀신·유령 분장을 하고 벌이는 축제다. 아이들이 귀신이나 마녀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돌며 초콜릿이나 사탕을 얻어가기도 한다. 이 문화가 조기 영어교육과 함께 국내에 들어온 것이다.
다섯 살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 성모(33)씨는 지난 24일 어린이집에서 열린 핼러윈 파티를 위해 전날 반차를 냈다. 그는 마트에서 아이들이 먹을 간식을 사다 원생 수대로 일일이 낱개 포장해 어린이집에 보냈다. 일찍이 인터넷 쇼핑몰에선 '번개맨' 의상을 3만8000원에 주문했다. 성씨는 "너무 요란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기죽지 않을 의상을 고르느라 2주 넘게 쇼핑몰을 들락날락했다"며 "직접 호박파이나 유령 모양 빵을 만들어 어린이집에 찾아간 학부모들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어린이집에서 광복절이나 한글날의 의미를 아이들에게 알려주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서울 목동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재작년부터 핼러윈을 챙기고 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 섭외부터 학원 인테리어 비용까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며 "홍보 효과가 크지도 않은데 주변 학원들이 모두 하니 어쩔 수 없이 우리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부 외국계 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선 단합 차원에서 핼러윈 파티를 열기도 한다. 이를 즐기는 직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직원들은 "차라리 폭탄주 마시는 회식이 낫다"고 호소한다. IT 기업에 다니는 박모(29)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회사 핼러윈 파티에
서 마술쇼를 할 예정이다. 원하는 사람만 분장을 하고 오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실상 팀마다 막내 사원 두세 명이 경연대회처럼 참가한다고 한다. 박씨는 "신입사원들이 유령 옷 입고 선배들 앞에서 장기 자랑을 한다"며 "서양 문화를 따라 한다면 수평적 문화도 같이 들여와야 하는데, 양복 입은 임원들 앞에서 막내들이 재롱부리는 모습을 볼 때면 뜨악하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7/20171027022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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