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7.09.22 04:00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로망' 앞에 우리는 약해집니다. 분별을 잃기도 하고, 때론 이기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지요. 더구나 로망이 현실로부터 점점 멀어져 갈 때 우리는 그런 덫에 빠지기 더욱 쉽습니다. 나의 분별없는 로망을 잠재우고 주어진 책무를 다하는 것. 그것이 가족에 대한 성숙한 사랑의 길이겠지요.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의 분별없는 로망을 실현하게 해주고 싶은 분별없는 마음 또한 가끔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홍여사 드림
에펠탑의 파리로 가자. 베네치아의 곤돌라를 타자. 아니다, 뉴욕의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러 가자!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흔하지는 않던 25년 전. 지구본을 손안에 굴리듯 세계의 도시들을 맘대로 부르며 그렇게 호기를 부리던 우리는 돈 많고 한가한 사모님들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월급으로 애들 키우며 살림하던 마흔 살 주부들이었죠. 여고 동창 다섯이 모여 미래의 어느 꿈같은 날을 그려보는 중이었습니다. 우리 다 같이 유럽으로 혹은 미주로 비행기 타고 떠나는 날을….
실상은 딱했습니다. 누구는 시어머니 점심 차려드리고 나오느라 모임에 지각했고, 또 누구는 입시생 아이 때문에 바로 가봐야 한다 했습니다. 아내의 외출 자체를 싫어하는 남편 때문에 거짓말을 둘러대고 나온 친구도 있었습니다.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그야말로 한창때였기에 친구들끼리 마음 편히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았지요. 그래서 우리는 '홧김에' 십 년 뒤를 기약해 본 겁니다.
쉰 살쯤엔 애들도 다 컸을 테고 부모님도 세상을 뜨셨을 테고 남편도 철이 나면서 기가 좀 죽겠지. 더불어 경제적 여유도 생길 테니 그때 우리도 한번 로망을 실현해보자. 파리든 뉴욕이든 상관없다. 여고 시절처럼 우리 다섯이 팔짱 끼고 같이 갈 수만 있다면….
그러나 현실은 우리 생각과 달랐습니다. 아이들은 이십 대가 되어도 여전히 의지를 했고 부모님은 백 세를 사시며 자꾸 편찮으셨습니다. 시아버지가 중풍을 맞으셔서, 일찍 시집간 딸이 산달이 가까워서…. 한 친구의 족쇄가 풀리면 다음 친구가 수갑을 찼죠.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약속을 수정했습니다. 적어도 예순 살은 되어야 신간이 편해지려나 보다. 우리 예순 살에 유럽 가야 하니까 팍삭 늙지 않도록 각자 관리들 잘하자.
그러나 예순 살 나이도 언제인지 모르게 왔다가 가버렸네요. 자식 뒤치다꺼리에 부모님 병수발을 들고 나니 본인과 배우자의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오는 겁니다. 지난 사오 년간 우리는 돌아가며 병원 신세를 지고 돌아가며 간병을 했습니다. 여행 경비로 모아온 돈을 위로금 봉투로 야금야금 나눠 가지는가 싶으니 씁쓸하기 그지없었지요.
그러다 올해,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가 거짓말처럼 살아나는 듯했습니다. 이 집 저 집 따져봐도 걸리는 게 없는 희한한 해더군요. 외손녀 봐주느라 꼼짝 못 하는 내가 문제라면 문제였는데 독한 마음 먹고 딸한테 선언했죠. 세상없어도 나 이번에 열흘은 쉬어야겠다고요. 딸이 마지못해 받아들였고 우리의 계획은 당장 실행에 옮겨졌습니다. 그리하여 환갑을 넘긴 여고 동창 다섯이 드디어 유럽행 비행기를 타게 된 겁니다.
남들 눈에는 할머니들이 무리하는 걸로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마음은 소녀 시절 그대로였습니다. 여기저기 쑤시던 몸도 거짓말처럼 아프지 않더군요. 이래서 친구가 좋고 여행이 좋은 거구나. 우리는 일정의 절반도 마치기 전에 벌써 다음번엔 어디로 갈지를 놓고 옥신각신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밤, 저와 한방을 쓰던 짝이 잠자리에 들다 말고 뜻밖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겁니다. 실은 못 올 여행을 온 거라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는 겁니다. 이유를 물으니 남편 때문이라 합니다. 그 친구 남편이 오륙 년 전쯤 암 수술을 받은 사실은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지금껏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니 완치됐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친구 말은 그게 아니랍니다. 올해 초 암이 재발해서 다시 수술을 받았다네요. 예민한 시기는 지났지만 그래도 환자인 남편을 집에 두고 온 셈이랍니다. 망설이는 친구를 남편이 오히려 등 떠밀었다네요. 지난 오 년간의 수고에 상을 주고 싶다고요. 여행 가서 기분 전환하고 오면 더 씩씩하게 간병해줄 거라 믿는다면서요. 저는 뭐라 답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남편 말도 일리가 있다 생각하면서도, 솔직히 나라면 그 말을 들었을까 싶었습니다. 아픈 사람 두고 와서 무슨 좋은 풍경이 눈에 들어올까? 물론 말은 그렇게 안 했지요. 잘했다고 했습니다. 좋은 구경하고 집에 가서 남편 잘 보살피면 된다고요.
그런데 그다음 날 일이 났습니다. 남편이 걱정되었던 친구가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시집간 딸에게 모진 소리를 들었나 봅니다. 환자를 두고 엄마가 어떻게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느냐고, 솔직히 같은 여자로서 이해 안 된다고 하더랍니다. 올케 보기 부끄럽다고까지….
종일 낯빛이 안 좋던 친구가 밤에 저를 붙잡고 울더군요. 부끄럽고, 서운하고, 가슴이 터지게 억울하답니다. 내가 너무했는 줄은 알지만 자식한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고요. 우는 친구를 보며 제 마음도 미어졌습니다. 속으로 친구를 흉보던 저 자신이 미안했습니다. 긴 병수발을 겪어보지도 않고 친구를 너무 쉽게 비판했잖아요. 그리고 친구의 딸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아버지 돌보느라 마음 졸이며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을 오 년이나 했으면 자식들이 나서서 엄마의 휴가를 만들어줬어도 되지 않나요? 등 떠밀어 여행 보내고 아버지를 좀 챙기면 되지요. 그 아버지가 땀 흘려 벌어온 돈으로 고생 모르고 자라 명문대 간 자식들이면 그들에게도 최소한의 의무가 있지 않을까요. 저희의 자유와 사생활을 지킬 때는 쿨하기 그지없는 자식들이 엄마의 희생을 요구할 때는 도리와 인정을 들먹이는 것 같아 같은 엄마로서 씁쓸했네요.
여행을 다녀온 후 친구는 다시 남편을 위해 공부를 하고 건강식을 만드느라 바쁩니다. 그리고 우리 모임은 다음 여행을 얘기하고 있지요. 이번엔 그리스다, 북유럽이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자식과 싸우고 남편의 눈총을 받으며 다녀온 그 여행이 아마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 것임을. 그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다녀오길 잘했다 생각한다면 우리 할머니들이 너무 이기적인 건가요?
※실화를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21/20170921021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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