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러스트=이철원

[표류하는 호모인턴스]② 열정페이 내몰려도 法의 보호 못 받아…文 정부서 인턴제도 없어질거란 예상도

세종=전성필 기자

입력 2017.06.27 10:01


취업준비생 이모(·26)씨는 20152월부터 10개월 동안 서울시의 한 지자체가 운영하는 문화 공공기관에서 청년인턴으로 일했다. 공공기관에서 이씨가 한 일은 일반 서무 작업뿐만 아니라 문화 행사 기획부터 행사 출연진 섭외 및 스케줄 관리까지 정규직 직원의 업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이씨는 이 기관에서 주말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매번 나와 업무를 도와야 했다. 반면 기관 정직원들은 주말 근무표를 만들어 순번에 맞춰 출근했다이씨가 매월 받는 월급은 세전 약 120만원. 당시 법정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했다. 이씨는 정규직 업무와 다르지 않은 업무를 하면서도 아르바이트 수준의 대우를 받았지만 인턴 계약서에 근무 조건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 따로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인턴의 신분은 매우 애매하다. 인턴을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 인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권고사항일 뿐이다. 법적 구속력이 없어 기업들은 이를 무시하는 실정이다인턴 제도의 역사가 오래된 국가에서는 인턴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세운 경우가 여럿 있다. 교육 외 일반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인턴을 근로자로 인정하는 조항을 법에 명시했다. 한국에서도 인턴을 근로자로 보고 권리를 보호하는 법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새 정부에서도 아직 인턴 제도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정체 모를 한국의 인턴정부 권고도 유명무실

한국 노동법에는 인턴 관련 조항이 없다. 수습이나 실습혹은 훈련생등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이지만 인턴은 법률에 명시된 용어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에서 근로자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인턴은 임금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교육혹은 훈련, 경험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근로자로 보지 않는 것이다인턴이 실질적으로 하는 일이 교육프로그램이 아니라 근로자의 일과 같으면 노동법의 보호대상이 된다. 그러나 인턴이 직접 자신이 근로를 했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증명해야만 한다. 절대 의 지위에 있는 인턴으로서는 회사를 상대로 근로자로 인정해달라고 싸움을 거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인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핵심은 실습생과 수습생, 인턴 등 교육·훈련이 목적인 사람과 임금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자를 구별하는 것이다. 인턴·실습생이 일반 근로자와 하는 일에서 차이가 없을 경우 일반 근로자로 봐 인턴도 최저임금 등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인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업들은 18시간, 40시간 근무 한도를 지켜야 하고, 연장·휴일·야간 근무를 인턴에게 시켜서는 안 된다. 인턴 기간도 6개월 이내로 제한하고, 업무 강도가 낮은 경우 2개월을 넘겨서도 안 된다. 기업은 상시 종사자 비율 10% 이상의 인턴을 모집할 수 없다. 그러나 인턴 가이드라인은 기업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법규정이 아닌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 고용부가 작년 9~12월 인턴 다수 고용 사업장 345곳을 대상으로 인턴 가이드라인 준수여부를 점검한 결과 59개소(17.1%) 437명이 실질적으로 근로를 했음에도 연장근로 수당 등 약 16700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무급인턴 판단 기준 /미국 노동부 제공.


선진국은 인턴 지위 법으로 보장… “정부도 아직은 대책 없어

인턴 제도가 발달한 국가에선 이들의 지위를 보장하기 위해 권고가 아닌 법안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미국 노동부는 2010년 공정노동기준법을 통해 무급인턴 판단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무급인턴들은 인턴 업무가 고용주의 시설을 실제로 작동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교육 환경에서 제공되는 훈련과 유사해야 하고 인턴십 경험은 인턴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인턴은 정규 근로자의 일을 대체 하는 것이 아닌, 기존 직원의 면밀한 감독 하에 수행돼야 하고 고용주는 인턴의 활동으로 인해 어떠한 직접적 이득도 얻어선 안 된며 인턴 기간이 종료될 때 반드시 정규직 전환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인턴은 무급이라는 점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기준을 벗어날 경우 무급인턴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 근로자와 똑같이 대우해야 한다. 기업이 이를 어길 경우 인턴은 쉽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프랑스는 노동법에 인턴의 임금 기준뿐만 아니라 근로 시간과 업무 장소, 보고 의무 등 임금 외적인 부분의 명확한 기준을 명시했다. 인턴 기간은 1년에 최대 6개월로 제한하고, 2개월 이상 일한 인턴에 대한 임금의 최저 수준이 사회보장급여의 15% 이상이어야 한다. 만약 기업이 인턴 사용 규정을 어길 경우 인턴 근로자 1인당 벌금으로 2000유로를 부과하고, 반복해서 어길 경우 최대 4000유로까지 벌금이 올라간다.

독일도 별도의 직업교육법을 마련해 교육을 빙자해 인턴에게 업무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했다. 무급인턴은 근로자가 아니라고 본다. 만약 업무가 교육의 범주를 벗어날 경우 근로자로 규정해 보호해야 한다. 직업교육법에는 인턴의 수당 청구권이나 휴식 청구권 등도 명시돼 있다.

법적 보호 없이 인턴 제도가 확산한 데에는 정부 책임도 크다. 정부는 인턴을 청년 실업을 해결하는 대책으로 활용해왔다. 1997IMF 외환위기 당시 청년 실업률이 오르자 정부는 정부지원 인턴제를 시행해 기업이 고졸이나 대졸(졸업 예정자 포함)자를 인턴으로 채용하면 인건비 일부를 지원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청년 실업률이 높아졌을 때도 정부 주도의 청년인턴제가 시행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고용률 70%을 목표로 청년 인턴의 질을 높인다며 일·학습병행제와 중소기업 청년취업인턴제 등을 시행했다.

문재인 정부는 아직 인턴에 대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국정기획위원회나 일자리 위원회에서 일자리 질 개선과 청년 일자리 창출 대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인턴은 안건으로 언급되지 않은 상황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인턴을 일자리 형태 중 하나로 보기에는 본래 취지와 맞지 않는 것 같아 아직 일자리 대책의 대상으로 논의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인턴제도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도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그동안 강연을 통해 인턴 고용 폐지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장 실장은 또 지난달 한 방송에 출연해 기업이 직원을 채용하면서 인턴으로 채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인턴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에서 인턴은 실습생이나 수련생 등 여러 용어로 불리는데 이런 유형들을 하나의 용어로 통일하고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을 하루빨리 제정해야 한다면서 법에도 불합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와 같이 모호한 표현이 아닌 해서는 안 되는 행위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턴 제도는 일자리와는 별개로 취업 전에 교육과 경험을 하는 과정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출처: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27/20170627009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