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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태평로] "꿈을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김민철 사회정책부장

입력 2016.12.16 03:04


"주변에 꿈이 있는 친구가 많지 않습니다.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꿈을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꿈을 생각할 시간이 없으니 공부를 할 목표도 생기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부산 K중 3학년 여학생)

"학교 마치고 공부방 갔다 오면 (오후) 7시, 숙제를 하다 보면 9시 30분이어요. 보드 타고 친구들이랑 놀고 그런 걸 할 시간이 없어요."(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

지난 14일 국제 구호 기관인 굿네이버스가 학생(초등학교 4·6학년, 중학교 2학년)과 학부모 1만8000명을 대상으로 한 아동 권리 실태 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나온 학생들의 육성이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학생들에게 죄짓는 기분이다. 이런 육성을 듣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학교 공부 외에 사교육을 받느라 시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실태 조사에서 잠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초등 4학년이 15.4%였고, 초등 6학년은 20.8%, 중학 2학년은 39.3%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급증했다. 조사를 총괄한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가 아동의 권리를 짓누르고 있다. 외국과 비교하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동권리지수가 떨어지는 폭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사교육비를 대느라 휘청거리고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가정은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이에 대한 자성으로 우리나라 교육과정과 수능시험 수준은 학업 부담을 줄이는 추세에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3년마다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2015년 한국 학생들 학력은 OECD 35개국 가운데 읽기 3~8위, 수학 1~4위, 과학 5~8위로 2012년(읽기 1~2위, 수학 1위, 과학 2~4위)에 비해 뚜렷하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학습 부담은 줄이면서도 시대 변화에 맞게 교육 내용을 바꾸어 학력 수준은 높이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교육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이런 문제들은 교사 양성과 대학 입시 제도의 근본적 개혁과도 맞물려 있다. 더구나 교육 현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널뛰는 교육정책에다 교육감들이 제각각 펼치는 교육 실험에 시달리느라 피로감이 적지 않다. 이런 문제를 고민해 대응해야 할 교육부는 정권의 교육 공약을 뒤처리하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각 정당이 선거 때 단편적으로 내놓는 교육 공약으로는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지난 수십 년 경험으로 드러났다. 문제 덩어리인 것은 알지만 누구도 이렇게 하자고 자신 있게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얼마 전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교육 개혁을 위해 10년 임기의 교 육개혁위원회 도입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구체적으로 "정권 임기와 관계없이 최소 8년은 일관성 있는 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임기를 10년으로 하고 위원의 3분의 1은 여야 추천으로 하자"고 말했다. 내년 대선에서 각 정당이 교육 문제를 전반적으로 검토해 결정할 교육백년대계위원회 구성을 공동 공약으로 내놓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안인 것 같다.



이봉주 교수, 박세일 명예교수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15/20161215030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