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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박돈규의 극장傳] 광화문 글판이 하는 말

박돈규 여론독자부 차장

입력 2016.12.13 03:12


시대와 소통해온 광화문 글판은 새로운 시작 알리는 나만의 극장
어질러진 정치 때문에 피로하고 휑뎅그렁한 마음까지 어루만져줘
1년 돌아보고 새 출발 하는 계절신년과 再生의 에너지 활용하길


석 달에 한 번 나만의 극장에 간다. 그 상영관에는 바퀴가 달려 있다. 일산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통근 버스다.

월요일인 지난 5일 운전석 뒷자리 창가에 앉았다. 안과 밖 기온 차이로 유리창에 뿌옇게 습기가 찼다. 버스는 수색과 이화여대, 경복궁역을 지나 마침내 남대문 쪽으로 우회전했다. 유리창을 닦았다. 영화는 그제야 시작된다. 주말에 작업해 이날 걸린 20m×8m 크기 스크린이 창밖에서 돌진해 왔다. 광화문 겨울 글판이다. 고맙게도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 버스를 잡아주었다. 글판을 더 오래 눈에 담았다.

"열려 있는 손이 있고/ 주의 깊은 눈이 있고/ 나누어야 할 삶, 삶이 있다."

폴 엘뤼아르의 시 '그리고 미소를'에서 뽑아온 구절이라고 한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시 '커브')로 유명한 프랑스 시인이다. 이번 겨울 글판은 바빠서 돌아보지 못한 주변을 살피고 희망을 나누며 살아가자는 뜻을 담았다. 마주 보고 차(茶)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소통과 공감을 표현했다.

휑뎅그렁한 마음에 글판이 들어온다. 광화문 글판은 시대, 사회 상황과 긴밀히 소통했다. 경기가 좋지 않았던 2001년 겨울에는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봄"(이성부 시 '')으로 희망을 읊조렸다. 지난 9~11월 걸렸던 가을 글판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김사인 시 '조용한 일')도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읽고 싶은 대로 문구를 해석한다. 글판의 숙명이다. 2008년 봄에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빌려 "추락하는 모든 것들과 꽃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라고 걸었더니 "왜 정권 교체기에 추락이라는 표현을 썼느냐"는 항의가 들어왔다.

2012년 대선(大選)을 앞두고 겨울 글판 문안 선정 회의를 참관했다. "대선까지는 시끌벅적할 테고 환호와 탄식이 교차할 겁니다" "변동성이 아주 큰 3개월이라 신중을 기해야 해요" "시치미 뚝 떼는 것도 방법입니다"…. 선정위원들은 글판이 정치적으로 읽힐까 봐 염려하고 있었다. 고심 끝에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반칠환 시 '새해 첫 기적')를 골랐다.

폴 엘뤼아르, 이성부 시인, 김사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 반칠환 시인



황새, 말, 달팽이가 다양한 계층을 상징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해 첫날에 도착한다는 표현이 유머러스하고 역동적이었다. 문제는 그놈의 정치였다. 누군가 "좀 확대 해석이지만 세 대선 주자가 완주한다는 느낌이 드는데요"라고 하자 폭소가 터졌다. 한 달 뒤 안철수 후보는 야권 대통령 후보직을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했다. 그렇게 뽑힌 대통령은 임기 중에 탄핵을 맞았다. 세월이 날아가는 화살이라고 누가 말했나. 2016년은 어서 치우고 싶은데 그럴수록 더디게 갔다. 근본 없이 어질러진 리더십에 실망했고 화가 났고 정치 때문에 피로했다.

11월 영화 관객(1268만명)은 기록적으로 적었다. 전년 동기 대비 259만명(17%)이 줄었고 5년치 평균(1449만명)에도 한참 못 미쳤다. 극장 밖에서 벌어진 드라마가 극장 안 판타지를 압도한 탓이다. 현실에서 뚝 떨어져나와 영화를 감상할 경황이 아니었다. 연말에 극장에서 위로가 필요하다면 영화 '라라랜드'를 볼 일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을 지켜보며 누가 날 발견해줄까 의심하는 여자(에마 스톤)와 "난 위기가 좋아. 인생의 펀치를 맞아주는 거야"라고 말하는 남자(라이언 고슬링)가 주인공이다. 그들은 번번이 배우 오디션에 떨어지고 해고도 당하지만 물러서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간다.

라라랜드, 애마 스톤, 라이언 고슬링, 야누스


영어로 1월(January)은 얼굴이 두 개라 앞과 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신(神) '야누스(Janus)'에서 왔다. 끝과 시작이 겹쳐지는 이 계절에 야누스처럼 2016년의 실패를 돌아보며 2017년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다. 가족에게 잘해야지, 재미있게 일해야지, 투표에 더 신중해야지…. 해넘이는 기회이자 선물이다. 곧 헬스클럽과 외국어 학원이 바빠질 테고 사업자 등록을 하러 온 사람들로 세무서가 북적일 것이다. 저마다 '더 나은 나'가 되려는 시도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운을 북돋워 주는 광화문 글판처럼 신년 을 둘러싼 에너지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며칠 전 재생용지로 만든 신년 다이어리를 받았다. 새해를 앞당기고 싶어서인지 더 반가웠다. '재생(再生)'이라는 낱말을 입속에서 박하사탕처럼 굴려보았다. 뻑뻑한 고구마 같은 묵은해를 삼켜야 마침내 청량한 새해가 온다. 다시 1월 1일, 리셋(reset·초기화)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12/20161212029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