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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가슴으로 읽는 한시] 정릉에서 친구에게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입력 2016.09.18 03:12


정릉에서 친구에게

이런 곳에 작은 초가집 짓고 산다면
그게 바로 부생(浮生)에서 늙음을 막는 방법이지.

사시사철 솔향기 풍겨서 여름 더위를 식혀주고
하루라도 계곡 물소리 들으면 십 년은 더 살겠군.

그윽한 새는 사람을 만나도 울 줄을 모르고
잡초들은 다들 예불에 쓸 향기를 품고 있네.

한직에 뒤처진 신세가 깨끗한 복이거니
나중에라도 이곳의 일을 잊지 말게나.


貞陵齋舍 與申寢郞錫寬作

此間能築小茅堂 (차간능축소모당)
便是浮生却老方 (편시부생각로방)

松氣四時三夏少 (송기사시삼하소)
溪聲一日十年長 (계성일일십년장)

幽禽不解逢人語 (유금불해봉인어)
雜草皆含禮佛香 (잡초개함예불향)

寄在郞潛爲凈福 (기재낭잠위정복)
異時玆境莫相忘 (이시자경막상망)



동번(東樊) 이만용(李晩用·1792~1863)이 50세 무렵에 썼다. 시인이 서울 북쪽 정릉에서 근무하는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는 남보다 뒤처진 능참봉 신세를 하소연했다. 그러면 위로를 해야겠다. 그런 소리 말게. 출세한 이들이 번잡한 도회지에서 시달릴 때 이렇게 경치 좋은 데서 한가롭게 지내잖나. 사시사 철 풍겨오는 솔향기는 무더위도 물리치고, 하루라도 계곡 물소리 들으면 수명이 십 년은 연장되겠네. 남들은 수명을 줄일 때 자네는 수명을 늘리는군. 이런 외딴곳에 근무하다니 실은 청복(淸福)을 누리는 걸세. 훗날 출세하더라도 이곳에 머물렀던 것을 잊지 말게나. 한직에 머물러 있는 것 그게 도리어 인생의 행복일 수 있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17/20160917010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