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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ESSAY] 추석, 이제는 가족 파티다

권지예 소설가

입력 2016.09.14 03:02


제수 음식 차리느라 고생했던 추석
이젠 조촐한 메뉴로 상 차려 제사보다 파티 의미 커지고
자손 모두 모여 즐기니 얼마나 감사한 시간인가

추석 명절이 행복했던 건 어린 시절이었다. 근심 걱정 없이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추석빔이라는 새 옷도 입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혼 후 '시월드'라는 행성이 생긴 이후부터는 그 인력(引力)으로 삶의 기류가 달라졌다. 특히 음력 8월 보름과 음력 정월 초하루가 되면 그 인력은 가공할 만하다. 이 무렵 인터넷에선 '명절 증후군'이나 '명절 이혼', '고부 갈등'이란 검색어가 떠오른다. 명절 며느리 필수품인 가짜 깁스라는 반짝 상품도 뜬다. 게다가 며칠 전에는 며느리가 비밀경찰보다 더 무서운 시어머니의 SNS 감시망을 피해 '사이버 망명'을 했다는 정치적(?) 기사까지 떴다.

시골 출신 남편과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을 때, 친정어머니 마음에 들었던 한 가지는 그가 7남매 중 막내아들이라는 점이었다. 외할머니가 종갓집의 종부라 평생 온갖 봉제사며 궂은일을 하신 터라 딸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어머니를 막내아들인 아버지에게 시집보내셨다. 그래서일까. 어머니는 내가 막내아들에게 시집가는 걸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셨다.

그러나 충청도 두메산골 시댁의 종부인 시어머니는 명절 전에 콩나물을 키워놓고, 청국장을 띄워놓고, 두부를 만들고, 떡쌀을 씻어 놓으셨다. 온 시댁 식구가 모이면 서른 명 정도 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피란 행렬 같은 귀성길을 뚫고온 며느리들은 '몸뻬'를 걸치자마자 부엌으로 나간다. 서울에서 직장이 끝나는 대로 달려간 나는 명절 가내수공업 숙련공들인 형님들의 일손에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놀 수 있는가. 막내인 나는 '따까리'라 잠시 쉴 수도 없다.

밤새도록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고 제수 음식 장만하는 것을 돕느라 한숨도 못 잔다. 먼동이 트기 전부터 재래식 부엌에 나가 시골 출신 동서들이 칠칠하게 부엌일을 하면, 항상 보조로 대기하거나 심부름을 했다. 생전 처음으로 가마솥 밑 아궁이에 어설픈 솜씨로 군불을 땔 때는 치맛단을 태워먹기도 했다. 게다가 설거지는 내 차지였다. 집안 대소가 남자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나서 상을 몇 차례 차리고 물리면 그때야 동서들과 밥을 먹었다.

하지만 더 고역스러운 집안 행사가 또 기다리고 있는데, 명절이면 온 가족이 셋째 시아주버니의 트럭을 타고 근처 수안보로 목욕을 가는 행사였다. 새색시였던 나는 시어머니, 동서들과 벌거벗고 목욕하는 게 죽을 만큼 부끄럽고 싫었다. 우애가 깊다고 자부하는 시댁 식구들은 저녁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윷놀이나 고스톱으로 또 밤샘을 한다. 한 점에 100원씩 하는 고스톱보다 잠시 눈이라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졸면서 져주면서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도 눈치껏 해야 한다.


늘 명절이 두려웠다. 명절만 되면 극기훈련한다는 각오로 며칠 전부터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명절뿐 아니라 시부모님 생신 때도 내려가서 온 마을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음식을 대접했다. 당시만 해도 시댁은 난방도 수도 시설도 없는 부엌에 가마솥을 앉힌 아궁이가 있는 재래식 부엌이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강도 노동을 하고 난 후 서울로 돌아오면 며칠씩 몸살을 앓아야 했다.

올해는 지난여름 시집보낸 딸이 처음 추석을 맞이한다. 내 새색시 시절의 추석이 생각나서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지방에 사시는 딸의 시어머니는 직장 다니는 딸의 고생을 덜어주실 생각으로 제수를 이미 주문해 놓으셨다 한다. 나와 동갑인 일하는 여성인 그분의 배려가 고맙다.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나도 나중에 내 며느리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 내 제사상이라면 나는 그 맛없는 제삿밥엔 관심 없다. 다만 내 자손들이 명절이라 모두 모여 있으니 보고 싶어서 혼백이라도 잠시 내려오고 싶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추억하며 조금이라도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면 제사상 위에 내가 좋아하는 커피 한잔이면 어떤가.

이제 시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시고 장남인 큰아주버니 댁에서 명절에는 조촐하게 조찬기도를 지내기 때문에 제사를 모시지는 않는다. 옛날의 고달프고 북적거리는 추석도 이제 한시절의 추억이 되었다. 수년 전부터는 며느리가 없는 연로한 친정 부모님과 동생들이 맏딸인 내 집에 모여 명절을 지낸다. 부모님이 좋아하시고 식구들이 원하는 메뉴로 조촐하게 차리니 추석을 빙자한 가 족 파티라 할까. 그래도 부모님 생전에 한 번이라도 더 자손들이 모두 모여 행복한 시간을 갖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조상 제사에 인생을 걸었던 부모님 세대가 돌아가시면 제사의 모습과 제수 준비도 이제 좀 달라지지 않을까. 추석이란 명절이 온 가족이 모여 감사절(Thanksgiving day)의 의미를 더 되새기는 날이 되면 좋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13/20160913025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