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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ESSAY] 일흔에도 꽃씨처럼

원숙자 수필가

입력 2016.09.21 03:03


퇴직 후 시작한 무모한 농촌 생활…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귀가하는
정신없이 바쁜 날의 연속이지만 여전히 하고픈 일 많은 이 맘을
다독이며 달래는 자연 있기에 농장에서 살어리 살어리랏다

직장에 다닐 수 있는 시기를 하루 중 낮이라고 한다면, 퇴직 후의 삶은 저녁이다. 남편과 나는 저녁의 삶으로 농촌을 택했다. 뭘 믿고 뛰어들었는지, 생각하면 무모한 선택이었다. 시부모님은 오랜 세월 농부로 사셨지만, 남편은 초등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학교에 다닌 농사의 풋내기였다.

고향인 충북 음성에 시부모님이 남겨 주신 땅이 있다. 논밭 주위엔 사방 어디를 보나 인가 한 채 없었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도 나 있지 않았다. 남편은 우선 지방도로가 있는 찻길에서 논밭 쪽으로 100여m 길을 내고 자갈을 트럭으로 사다가 길에 깔았다. 길을 낸 다음 밭 한가운데에 기거할 수 있는 컨테이너를 들여놓았다.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위해 관정을 파고, 전기를 끌어들였다. 남편은 이 많은 일을 거의 혼자 힘으로 해냈다.

농장의 일은 3월부터다. 콩대깻대를 걷어다 한 군데 쌓아 놓고 불을 놓아 태우고 주위를 말끔히 청소하는 것으로 농장 일은 시작된다. 밭을 갈아엎는다. 겨우내 추위에 웅크리고 있던 흙의 기를 펴주는 거다. 농촌에서 겨울을 나는 농부들이야 웬만한 농작물은 포트에 씨를 심어 모종을 길러 밭에다 옮겨 심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5일장에서 모종을 사다 밭에 바로 심는다. 고추·참깨·고구마· 등을 심고, 반찬거리로 오이·가지·호박·상추·아욱 등을 심는다.


고추, 참깨, 고구마, 콩

오이, 가지, 애호박, 상추

아욱, 바랭이, 쇠비름, 명아주


모종을 심고 나서 이젠 좀 쉬어도 되나 싶지만, 농촌 일이란 숨 돌릴 새가 없다. 농작물의 을 따주고, 가지 쳐주고, 이랑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지지대를 박아 주고, 지지대에 걸쳐 을 2~3번 매주고, 비료 주고, 을 뽑아줘야 한다. 사람에게 이로운 잡초가 없는 건 아니지만 밭의 잡초는 골치가 아프다. 특히 바랭이·쇠비름·명아주는 순식간에 농작물보다 웃자라고, 뽑아주고 돌아서면 어느새 고랑을 덮는다. 제초제를 주기도 하지만 제초제는 뿌리까지 말리는 게 아니라서 뿌리가 남은 잡초는 언젠가 또 고개를 내민다. 잡초와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잡초는 영악하기도 해서 어떤 것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농작물 뿌리에 바싹 붙어서 자라기 때문에 잡초를 뽑다가 농작물도 함께 뽑혀 발을 동동 구르게 한다. 고추 따고, 참깨 털고, 고구마 캐고, 콩 털고…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들어온다. 송장도 일어나 거든다는 농촌의 바쁜 날이 계속된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야 비가 오나 태풍이 부나 월급을 타지만, 농촌에서는 장마가 오래 계속되고 태풍이라도 불면 농작물은 작살나고, 농촌 사람들의 1년은 그대로 물거품이 된다. 올 같은 땡볕과 가뭄에도 농작물은 아주 결딴이 난다. 평생을 농업에만 기대 살아온 농촌 사람들에게 '농사 망침'은 곧 '죽음 같은 절망'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쩌겠나? 이듬해가 되면 농부는 다시 밭 갈고 흙을 고른다.

농촌 사람들은 아픈 데가 많다. 비 오는 날은 쉬는 게 아니라 병원 가는 날이다. 통증 완화 주사를 맞고, 침을 맞고, 골다공증 약을 타온다. 농장을 시작한 지 6년이 되던 재작년 남편은 요통과 다리 저림을 일으키는 척추전방전위증으로 수술을 받았다. 농장을 시작할 때처럼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래도 남편은 새벽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밭을 돌아보고, 농작물을 살핀다. 농장에서의 생활이 이젠 익숙해져 농장의 일이 피붙이로 다가오는 것 같다. 맞다. 전깃줄에 앉은 새 한 마리, 꽃 찾아 날아드는 벌·나비, 가을 하늘을 맴도는 잠자리, 밤이면 창틀에 와 앉는 개구리, '주는 게 좋은 겨' 하며 자연을 닮아 무엇이든 퍼 주려는 따뜻한 사람들…. 이들이 남편이나 나에겐 삶의 의미가 되고, 우리가 농장에서 사는 이유가 된다.

나는 오늘도 꽃씨 받으러 꽃밭으로 간다. 탁자에 받아놓은 여주 씨며 수세미 씨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에 더욱 여물어가는데 그도 모자라 백일홍이니 채송화 꽃씨를 받으러 꽃밭으로 가고 있다. 내년에는 죽어도 여한이 남지 않을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리도 다부지게 꽃씨를 받으러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아직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지금 죽으면 여한이 남을 것 같은,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 이 허기는 대체 무엇일까? 일흔에도 꽃씨처럼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싶은 이 미련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여주, 수세미, 백일홍, 채송화

돈만 주면 뭐든 사 먹을 수 있는 편한 도시 생활이라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도시 생활의 편함이 더 많은 병폐를 불러온다. 농촌 생활은 아픔도 주지만 자연은 그 아픔을 다독여 주고 치유해 준다. 그러니 농장에서 살어리 살어리랏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20/20160920031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