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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남자 태영호

[아무튼, 주말] 김치가 공짜에 무한리필, 가위로 자르기까지… 북한선 상상도 못할 일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입력 2018.12.22 03:00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한국에서 세 번째 맞는 겨울이다. 한국 김장 문화를 세 번 경험한 셈이다. 북에선 "남들 앞에서 자식 자랑하면 1등 바보, 집사람 자랑하면 특등 바보"라지만 내 입맛엔 집사람이 담근 김치가 제일 맛있다. 그런데 한국 오고선 아내가 만든 김치 맛을 통 못 봤다. 외식이 잦은 것도 이유지만, 겨울이 되면 여기저기서 김장 김치 가져다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경호원들도 자기 집 김치를 맛보라고 주고, 같이 일하는 분들도 챙겨준다. 그러니 우리 집 냉장고는 이맘때가 되면 김치 전시장이 된다. 어떤 집 김치는 젓갈 향이 나고 어떤 집은 생강 향이 많이 난다. 색깔도 크기도 다르다.

북한에서도 겨울이면 김장하느라 바쁘다. 11월 중순 평양 시내는 직장에서 보내주는 배추와 무 실은 트럭으로 붐빈다. 그때부터 2주 동안은 아파트 복도에 쌓아둔 배추와 무가 가득하다. 수돗물이 계속 나오지 않기 때문에 김장할 때는 아파트 동별로 물 공급 시간을 미리 공지한다. 그 시간에 맞춰 배추를 절이고 생강, 젓갈, 명태, 마늘, 고춧가루 등을 사서 양념을 만든다.


다른 먹거리가 없다 보니 북에선 김치를 겨울을 무사히 나기 위한 보험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필요 이상 담그는 경향이 있다. 우리 집은 부모님, 아이 둘 포함해서 여섯 식구에 100포기 정도 담갔는데 늘 남았다. 내년엔 적게 담가야지 하다가도 막상 김장철이 되면 반찬 걱정에 줄이질 못한다.


김치 냉장고가 없으니 북한 아파트에선 김칫독을 베란다에 내놓는다. 강추위에 김치가 얼 수 있어 온갖 대비책을 세운다. 김칫독을 가마니로 둘둘 말기도 하고, 나무틀을 짜 독을 넣고 톱밥을 두기도 한다. 그럴 돈이 없으면 독에 신문지를 붙인 다음 안 쓰는 걸레를 붙이고 다시 신문지를 바른다. 신문지 사이에 공기층이 생겨 냉기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 김칫독 밑에 두꺼운 나무판이나 큰 천 뭉치를 놓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종업원이 100명만 넘어도 구내식당이 있다. 직장에서도 김장 담그기는 연례행사다. 외무성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직원이 800명쯤 된다. 해마다 김장을 하는데, 배추 절이기에 하루, 버무리기에 하루가 걸린다. 주로 식당 아주머니들과 여직원들이 하는데, 국별로 인원을 할당해 동원하기도 한다.

김치맛은 남북이 좀 다르다. 한국 김치를 처음 먹었을 때 국물이 적어 좀 마른 감이 있었다. 왜 물기가 적을까 생각해보니 한국에선 김치 냉장고에 보관하거나 포장 김치를 바로 먹기 때문에 물이 많이 필요 없는 것 같다. 반면 북한은 독에 있는 걸 꺼내 먹으니 물기가 많다. 김칫국물을 훌훌 마시면서 김치를 먹는 수준이다. 대신 한국 김치는 물기는 적지만 보관이 잘되니 아삭아삭하고 색깔이 밝다. 북한에서는 3월이 되면 김치에서 벌써 군내가 나 김치 비빕밥을 해 먹거나 말려서 먹는다.

김장철이 되면 북한 언론들은 "김치는 우리 민족 창조적 재능의 산물"이라며 통배추김치, 보쌈김치, 양배추김치, 오이김치, 산나물김치, 호박김치, 콩나물김치, 송이버섯김치, 깍두기, 백김치, 나박김치 등 별별 김치를 소개한다. 평양시 여러 곳에서 김치 전시회도 열린다. 하지만 TV에서 소개하는 각종 김치는 그저 그림의 떡. 일반 가정에선 통배추 김치깍두기 정도 먹고, 좀 사는 집이면 명태식해, 가자미식해, 우레기(압록강에 사는 연어과 물고기)식해 정도 먹는다. 여름철에 동치미를 해 먹는 집은 정말 잘사는 집이다.

한 국 식당에서 놀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김치가 공짜라는 것. 평양 식당은 대부분 김치 값을 따로 받는다. 김치뿐만 아니라 다른 반찬도 다 사 먹어야 한다. '공짜 무한 리필'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다른 하나는 가위로 김치나 깍두기를 써는 것. 북한에서 가위는 종이나 천을 써는 도구로 생각한다. 그런 도구로 김치나 고기, 냉면을 써는 건 엄청난 결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21/20181221016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