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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남자 태영호

[아무튼, 주말] 北초등생도 어른 없으면 게임… 방학때 매일 해야하는 숙제 모임도 마찬가지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입력 2019.01.05 03:00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겨울방학을 맞아 내가 원장으로 운영해 왔던 '남북동행 아카데미' 학생들과 지난 29일 곤지암 스키리조트에 다녀왔다. 아카데미에 참여한 탈북민 출신 대학생들은 대부분 처음 스키를 탄다고 했다. 한 탈북민 대학생이 북한에 있을 때 방학 기간 마식령스키장에 벼르고 갔다가 정전이 되는 바람에 여비만 날려버린 얘기를 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한국에선 아이들이 겨울방학 때도 공부하느라 놀 시간이 없다는데 북한은 조직 생활을 하느라 놀 시간이 없다. 북한 대학과 중·고등학교는 1월과 8월에 각각 한 달 정도씩 방학을 한다. 대학생들 겨울방학은 방학이 아니라 작업 동원 기간이다. 1월 3일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은 신년사 관철 모임'을 한 후 삽을 들고 평양화력발전소로 나간다. 평양화력발전소에서 나온 석탄재를 평양시 밖으로 실어나른다. 방학 때 교수·직원들의 주택 건설에도 동원된다.

북한에서 겨울방학 하면 일반적으로 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소학교는 1월 1일부터 2월 15일까지 한 달 반 정도 방학을 한다. 내 인생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겨울방학도 역시 소학교 때다. 나는 1970년 평양시 중구역 창전소학교에 입학했다. 2학년이 되면 모든 학생이 소년단에 입단하는데 학급 단위로 소년단 분단이 되고, 한 개 분단은 다시 거주 지역에 따라 3개의 소년반으로 나누어진다.

12월 31일 그해 마지막 등교하는 날 담임선생님이 '방학숙제장'을 나누어 주고 학급 '비상 연락망 체계도'를 알려준다. 방학숙제장은 방학 시작 날짜부터 마지막 2월 15일까지 날짜별로 돼 있다. 김일성-김정일의 '혁명 활동 역사'부터 국어·수학 등 모든 과목별 과제가 날짜별로 돼 있다. 일기도 매일 써야 한다. 담임선생님이 방학 기간 매일 모여서 공부할 소년반 학습 그룹도 조직해준다. 매일 오전 9시 교사가 정해준 학생 집에 소년반별로 모여 방학숙제를 한다. 8~10명 정도가 한 소년반이다. 직장에 나가지 않는 어머니가 있거나 할머니·할아버지가 있어 애들을 통제할 수 있는 집에 주로 모인다. 소년반별 방학 일과는 오전 7시에 일어나 동네 한곳에 모여 집단 달리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 거의 못 한다. 대신 오전 9시가 되면 다들 방학숙제장을 들고 학습반에 모인다.

방학 기간 '꼬마 계획'도 수행해야 한다. '꼬마 계획'이란 파철·파병·파지를 수집해 학교에 내는 것이다. 지방에 놀러 가려면 사전에 부모가 선생님을 찾아가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겨울방학 때 학생들이 강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얼음장이 깨지면서 사망하는 사고가 자주 나는데, 사고가 나면 담임교사와 학교가 함께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한국과 북한 학생들의 겨울방학에 비슷한 풍경이 생긴 것 같다. 한국에서 방학 때 자녀가 게임에 빠져 있어 학부모들 속이 썩는다는데 북한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에서 큰애 겨울방학 때 소년반을 운영한 적이 있는데, 가만 보니 애들이 모여 방학숙제를 하는 게 아니라 부모들이나 할머니가 없는 틈을 타 게임을 하는 거였다. 2000년대부터 컴퓨터 게임DVD가 중국으로부터 밀수돼 들어오면서 아이들이 게임을 할 수 있는 노트북이나 게임 DVD를 가지고 집으로 모여들었다. 자기네들끼리 게임 DVD, 노트북, 오락팔(조이스틱), 게임 충전용 배터리 등을 분담해 가지고 온다. 공부하는 척하고 모였다가 어른이 집에서 나가면 문을 걸어 놓고 게임을 한다. 집이 여의치 않으면 전자오락관, 롤러스케트장에 몰려든다. 평양에도 이런 곳이 있다. 교사들과 소년단실에서 노는 아이들을 통제하기도 한다.

북한 학생들은 방학 때 결국 몸만 학교에 안 갈 뿐 계속 학교에 묶여 있는 셈이다. 한국은 '엄마', 북한은 '학교'의 통제와 감시를 받고 있는 셈이랄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04/20190104015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