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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남자 태영호

[아무튼, 주말] 北 아파트 베란다서 닭·오리 키워… 화장실엔 돼지도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입력 2019.03.30 03:00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최근 한국이 필리핀으로 쓰레기를 불법 수출한 것이 알려지면서 CNN 등 외국 언론까지 한국의 '쓰레기 전쟁'을 다루고 있다. 지난주 '아무튼, 주말'의 기사를 통해 전국 매립장에 매일 쌓여가는 '쓰레기 산'도 알게 됐다. 한국의 쓰레기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지 처음 알았다. 한국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쓰레기 분리수거 문화에 감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리수거 날이면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규정을 철저히 따르라고 어김없이 안내 방송을 하고, 쓰레기장에선 경비 아저씨가 제대로 하는지 지켜본다.

북한 외교관으로 덴마크, 스웨덴, 영국 등 선진국에서 생활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영국에선 대사관 명의로 대사관이 있는 구역을 담당하는 쓰레기 처리 회사로부터 바퀴 4개 달린 큰 쓰레기통을 하나 임대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포함해 모든 쓰레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이 쓰레기통에 넣고 월요일 새벽 대사관 정문 밖에 내놓았다. 그러면 쓰레기 처리 회사에서 쓰레기통 안의 쓰레기를 통째로 트럭에 쏟아 넣고 압축해 가지고 갔다.

한국은 절대적인 쓰레기양이 많은 것 같다. 물건을 사면 내용물보다 포장이 더 클 때가 많다. 매일 현관문에 붙어 있는 광고 전단, 고지서도 적은 양이 아니다. 강연이나 세미나에 가면 발제문들을 미리 출력해서 나눠 주는데 끝날 때 보면 자료를 가져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다.


한국에 와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침마다 동료들이 물티슈로 책상 닦는 걸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물걸레를 빨아 청소하면 되는데 아까운 종이로 책상 위를 한 번 닦고 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활하면서 보니 물티슈 가격이 생각보다 쌌다. 나도 몇 통 사무실에 사다 놓고 써보니 편리해서 1년 동안 물걸레질을 하지 않아도 됐다.

한국은 쓰레기가 많아서 걱정인데 북한은 버릴 쓰레기 자체가 별로 없다. 쓰레기 분리수거 규정도 자연히 없다.

북한에서 쓰레기 처리는 집안에서부터 시작된다. 음식물 처리는 집안의 '가축'이 담당한다.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평양 시내 아파트에 사는 넉넉한 가정을 제외하곤 대부분 아파트 베란다에 닭장이나 오리장을 만들어 놓고 닭과 오리를 키운다. 달걀을 먹기도 하고 이웃에 팔기도 한다. 한번은 외국 기자들이 평양 고려호텔 앞 아파트에서 새벽에 닭소리가 울리는 광경이 신기해 보도한 적이 있었다. 이후 고려호텔 앞 아파트에서만은 베란다에서 닭 키우는 걸 금지해 주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돼지를 키우는 집도 있다. 돼지를 키우면 악취가 아래위 집 화장실에까지 퍼지지만 찾아가 항의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살림이 어려워 돼지를 키우는 걸 뻔히 알기 때문이다. 집에서 키우는 닭, 오리, 돼지 등이 음식물 쓰레기의 상당 부분을 처리한다.

오전 6시쯤 되면 '뚱물 아저씨들'이 아파트 1층부터 음식물 쓰레기 배낭(뚱물 배낭)을 메고 '뚱물 주세요!' 하고 소리치면서 각 가정에서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를 걷어간다. 뚱물 아저씨들은 출근 시간 전 새벽에 와서 평양 시내를 빠져나가는데 그래야 규찰대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서 나오는 각종 병은 아침마다 '병 아줌마'들이 '병 파세요' 하면서 거둬 간다. 유리 맥주병, 포도주병, 플라스틱병, 페트병 등 모든 병에 다 수매 가격이 붙어 있다. 걷어간 병들은 장마당에 넘겨져 장사꾼들이 콩기름, 술 등 액체를 넣어 판매한다. 장마당에는 각종 중고 병을 파는 매장도 있다. 북한식 재활용이다.


책, 휴지, 마분지, 해진 옷 등을 걷으러 다니 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쓰레기는 비닐봉지에 넣어 동네 쓰레기장에 가져다 버린다. 아침마다 쓰레기장에 가면 나이 드신 분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면서 파지, 파병, 파비닐 등 팔 수 있는 것들을 주워 수매소로 간다.

한국 사람들은 쓰레기 산이 커가고 있다고 아우성치는데 나는 북한에는 언제면 물자가 풍족해져 쓰레기 산이 생길 수 있을까 생각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9/20190329022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