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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남자 태영호

북한 수험생도 '스펙 경쟁' 명문대 가려고 김일성 동상 청소도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입력 2019.09.07 03:00


[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스펙' 논란으로 소란스럽다. 한국에 와 보니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쉽게 폭발하는 것이 자녀의 대학 입학 특혜 문제였다. 부모의 인생 목표가 자녀의 명문대 입학에 있는 것 같다. 내 눈에는 일반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스펙 쌓기 코스가 있고, 이를 잘 활용하는 사람들의 '프리미어 리그'가 있는 듯하다.

북한의 대학 입학 과정도 단순하지는 않다. 한국의 수능시험과 비슷한 시험 점수, 수시와 비슷한 추천 서류들로 구성된다. 추천 서류에 들어갈 내용이 스펙에 해당한다. 대학 입학용 서류에는 가계표, 자서전(한국의 '자기소개서'에 해당), 학업 성적표, 생활 평정서 등이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이 가계표다. 가계표에 적힌 조부모, 부모, 친척 직업만 봐도 어떤 가정에서 출생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크게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으로 나뉘는데, 핵심계층에 속하면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업종합대학과 같은 명문대에 쉽게 들어갈 수 있다. 핵심계층에서도 조부가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을 함께한 '백두산줄기'이면 '혁명가 유자녀'로 분류돼 가산 점수를 많이 받는다. 부모가 당과 국가를 위해 일하다가 사고로 사망했거나 특수한 공로를 세웠으면 '사회주의 애국열사가족'으로 분류돼 가산 점수를 받는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정치조직 책임자가 써주는 생활 평정서다. A4 용지 2페이지 정도에 김씨 일가에 대한 충성심, 사회주의 애국심, 집단주의 정신, 혁명적 동지애를 반영하는 내용이 들어간다.


북한 대학 신입생들은 '직통생' '제대군인' '현직생'으로 나뉜다. 직통생은 고등중학교(고중)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을 말한다. 입학 연령이 17~18세 정도로 대학 신입생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신입생 중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제대군인이다. 군대에서 8~10년 군사복무를 하고 대학에 오니 평균 입학 연령대가 25~28세 사이다. 현직생이란 고중을 졸업하고 취직했다가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인데 10~20% 정도다.

부모들은 자녀가 고중에 입학할 때부터 어느 경로로 대학에 입학시킬지 고민한다. 직통생으로 입학시키려면 공부를 남보다 특별히 잘해야 하지만 정치 생활 평정도 잘 받아야 한다. 그러자면 매일 아침 동네 주변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이나 교실 벽에 걸려 있는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청소하는 '모심사업'을 꾸준히 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농촌 모내기 전투나 가을 추수 전투에도 성실히 참여해야 한다. 제일 높은 가산 점수를 받는 방법이 있다. 어릴 때 노래나 악기, 춤, 그림 등 예능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김정은으로부터 칭찬을 받거나 김정은을 감동시키는 편지를 올려 '그 애를 나라의 훌륭한 역군으로 잘 키우시요'라는 김정은 친필 서한을 받아 '접견자'로 분류되는 방법이다.

북한에서 간부가 되려면 군대에 먼저 갔다가 대학에 가는 것이 좋다. 그래서 힘 있는 집은 자녀를 군대에 보내고 노동당에 입당시킨 후 대학으로 '뽑는다'. 이런 집들은 자녀의 군사복무 기간을 5년 정도로 단축하면서 동년배보다 먼저 입당시키려고 온갖 편법을 동원한다. 부대의 '김일성김정일주의 연구실'이나 병실, 식당, 사격장 현대화 등에 많은 돈을 댄다. 군사복무 기간 특출한 공로를 세워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으면 대학 입학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출신 성분이 좋지 못하지만 신분 상승의 꿈을 가진 청년들은 '속도전청년돌격대'에 자원한다. 건설대 같은 조직인데 거의 10년 동안 도로, 철도, 탄광, 발전소 등 힘든 건설에 동원된다. 여기서 열심히 일하면 금성정치대학 같은 정치대학에 보내준다. 건설장에서 '노력영웅' 칭호를 받으면 대학 입학 등 신분 상승에로의 길이 열린다.

남북이 오래 갈라져 있었지만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부모 마음과 좋은 대학 가려고 '스펙' 쌓는 문화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06/20190906019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