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진 간호사
입력 2022.04.28 03:00
신규 간호사 45.5% 1년 내 퇴직, 면허 있어도 절반 가까이 일 안 해
업무 강도 높아 일·생활 균형 잡기 어렵지만… 전국의 간호사 파이팅!
“선생님은 간호사 오래 해주실 거죠?”
나와 동갑에 백혈병을 앓던 이동현(가명)님이 한 이 말은 간호사로 일하며 들은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학 병원을 그만두는 날 근무 끝나기 2시간 전에 환자가 내게 한 말이다. 2~3년 뒤 그 환자의 임종 소식을 대학 병원에 재직 중인 친구를 통해 최근 들었다. 가슴이 먹먹한 느낌이 꽤 오래갔다.
대학 병원을 나오기로 결심했을 때는 나 자신의 간호학과 선택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싫었다. 다시는 간호사를 하지 않을 것처럼 미련 없이 나왔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일을 다시 시작했다. 서울에서 혼자 자취 중이라 월세 보증금 대출을 갚아야 했다. 요양 병원에 입사해 병동 야간 당직과 투석실 근무를 했다. 야간 당직을 할 때는 쉬는 날이 많아서 아르바이트도 하며 대출을 다 갚았다.
요양 병원 일은 꽤 할만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일이 쉽다고 자만했고 나는 점점 게을러졌다. 변해가는 내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봉사 활동을 하면 착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라 쉬는 날엔 봉사도 나갔고, 나중에 미용 봉사를 해보고 싶은 꿈이 생겨 미용 학원도 다녔다. 대학 병원에서 쓰던 자료를 엮어 신규 간호사들을 위한 책도 썼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조금이라도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이렇게 하면 내가 누구인지, 이 길이 맞는지 답이 나올 줄 알았지만 쉽지는 않다.
지금 내게 간호사는 어떤 직업이냐고 물어본다면 균형 잡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직업이라고 답할 것이다. 간호사 박소진과 인간 박소진의 모습을 동시에 발전시키고 균형을 잡는 것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간호사로서 발전에 힘을 쓰고 줄을 당기면 개인적 발전은 늘 무너지기 마련이다.
병원이 바뀌고 연차가 쌓이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우선 대학 병원은 업무 강도가 높고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 개인의 발전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요양 병원은 상대적으로 업무 스트레스는 적지만 교육 기회가 적어 간호사로서 발전하긴 어렵다. 신규 간호사는 일을 배우면서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연차가 쌓이면 괜찮을 줄 알았으나 병원에서 진행하는 연구 과제를 맡고 신참 간호사 교육도 해야 해서 공부나 취미 생활을 할 여유 시간이 줄어든다.
병원 일과 개인 발전의 균형을 얼마만큼 잘 잡을지는 물론 각자 몫이다. 그러나 간호사가 처한 열악한 환경은 이 줄다리기를 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2019년 병원 간호사회에서 발표한 간호 인력 실태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는 1년 이내 45.5%가 이직한다. 신규 간호사 2명 중 1명은 1년 이내 병원을 나간다는 뜻이다. 또 대한간호협회 통계에 따르면 면허 등록 대비 활동 간호사는 51.9%에 불과하다. 간호사 인력 절반이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선생님은 간호사 오래 해주실 거죠?”
환자분이 이렇게 말한 까닭은 오랜 기간 입원 생활을 하면서 간호사들의 퇴직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엔 코로나 대응으로 업무 강도는 훨씬 높아졌지만 간호사에 대한 인식과 처우는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간호사라는 직업인으로 이룰 발전과 인간으로서 추구할 교양 이 두 가지를 모두 신경 쓰며 성장할 수는 없을까. 줄다리기란 본래 양쪽이 다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걸 알면서도 치열하게 싸워보고 싶다. 대한민국의 모든 간호사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2/04/28/VBVZZRV6HJACHKNTPGO6WX6Q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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