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입력 2023.06.22. 03:00
최근 중국 관련 뉴스를 장식하는 화두는 ‘청년 실업’이다. 중국의 청년 실업률이 20%를 넘어선 가운데, 광둥성에서는 대졸자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내는 계획도 발표했다. 대학 교육이 급속히 팽창했지만, 경제성장은 둔화하기 시작한 중국에서 쏟아지는 대졸자들이 눈높이에 맞는 직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사회 진출은 늦어지는데 주요 도시의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면서 결혼율도 폭락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청년층의 이러한 불만과 자조를 담은 신조어들이 유행하고 있다.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러누워 버리겠다는 자포자기의 표현인 ‘탕핑(躺平·납작하게 눕다)’이 대표적이다.
탕핑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었을 때, 중국 청년들이 사용하는 자조 언어를 보며 한국 청년으로서도 기시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많았다. 실제 한국에서도 10여 년 전부터 ‘88만원 세대’ ‘N포 세대’ ‘헬조선’ 같은 표현이 청년층의 어려운 현실이나 사회적 불만을 묘사하는 용어로 등장했다. 일본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는 ‘사토리 세대’가 있다. ‘깨닫다’라는 뜻의 ‘사토루(悟る)’에서 파생된 말이다. 현실 부귀영화에서의 해탈, 혹은 포기의 의미다.
한중 양국 청년층의 불만이 유사한 것은 아마 두 나라의 문화적 배경과 발전 경로가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유교에 근거한 동아시아 사회로서 두 나라는 모두 강력한 사회적 상승 압력이 있고, 그 상승을 교육을 통한 인적 자본 투자로 실현하고자 막대한 자원을 투여한다. 이런 문화적 행태는 두 나라의 급속한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저성장이 시작되니 이제는 줄어든 성장분을 차지하기 위해서 더욱 격한 경쟁에 나서야만 ‘제자리’라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경쟁은 한국과 중국에서 막대한 사회적 스트레스의 원천이 되었다. 사실 한국과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권 전반이 사회적 행태와 정서를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있음은 매우 익숙한 이야기다.
어쩌면 지방 소멸부터 인구 감소, 사회적 신뢰 상실까지 한국 사회가 공히 느끼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해서 ‘지역적 해결책’을 더 논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이 처한 현실과 한국이 딛고 서 있는 지반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경험과 한국과 유사한 인근 국가들의 경험을 비교하고, 원인을 찾으며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다.
일본의 중국 문학자 다케우치 요시미는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는 저명한 글에서, 일본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구와 일본 비교, 서구와 중국 비교로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 중국과 일본을 비교할 때 드러날 수 있으니, 이제는 아시아를 인식의 준거 틀로 삼자는 이야기였다. 다케우치의 언설은 1990년대에 ‘동아시아론’으로 부활하며 지역 연구의 시금석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시아론은 지정학적 긴장이 격화되면서 위기를 맞이했다. 군사적 긴장 속에서 동아시아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한 회의론도 커져만 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동아시아인으로서 서로에 대해서 차이점만큼이나 공통점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온라인의 공격적인 민족주의적 청년층을 일컫는 ‘소분홍(小粉紅)’이 중국의 K팝 팬덤에서 출발했다는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 팬덤의 투쟁 방법론을 배운 중국 네티즌들이 ‘국가를 아이돌처럼 숭배하고 투쟁한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외교를 이해할 때도 K팝, 나아가서 민족주의로 끓어오르던 한국의 2000년대 경험을 동시에 들춰볼 수 있다. 물론 반대로 중국과 비교함으로써 한국의 팬덤 정치나 N포 세대의 정서를 더 넓은 시각에서 재조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일본의 경험까지도 당연히 함께 비교해야만 할 것이다.
중국, 나아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문제를 공유한다는 인식하에서는 해결책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수 있다. 중국 인류학자 샹뱌오는 ‘주변의 상실’이라는 저서에서, 일상 속에서 자기 주변을 돌아보는 일이 현대 중국 청년들이 겪는 심리적 위기를 해소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세계 속에서 초라해 보이기만 하는 자기 자신에 몰입하며 삶을 소진하느라 중국 청년은 정처 없이 부유한다. 샹뱌오는 점점 사람들의 시선 바깥으로 밀리고 있는 주변과 일상을 돌아볼 때 구체적이고 실질적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의 이야기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익숙한 풍경이다. 반대로 우리도 중국, 혹은 일본인들도 공감할 만한 우리 자신의 경험과 해결책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렇게, 다시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를 통해서, 국경을 넘어서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이웃이라는 ‘주변’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다케우치 요시미 |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 샹뱌오 | 주변의 상실 |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3/06/22/JMYDUAUKVRCIHL2IYCDGYAIG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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